요즘 제일 흔한 말이 신자유주의, 개혁, 민영화 이런 말들이다. 신자유주의나 민영화는 개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임에도 마치 '민영화가 곧 개혁'인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물론 외환잔고가 텅 비고 국제구제금융을 받게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다 보니 외국자본의 요구에 의해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은 곧 개혁'이라고 '뺑끼칠'을 하면 곤란하다. 신자유주의정책에 개혁이라는 '뺑끼칠'을 한 데 대해서는 일부 지식인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
개혁의 한 방법으로서 민영화가 조심스럽게 거론될 수는 있다. 특히 현재의 공기업에는 공공성의 정도에 상당한 편차가 있으므로 각각의 공기업에 대한 구체적이고 철저한 검증 후에 일정 부분의 민영화는 필요할 것이다.
또한 태양열이나 풍력 등 대체에너지 확산을 위해 한국전력의 독점체제를 완화하고 민간의 참여를 촉진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기간산업을 팔아 넘기는 민영화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아서 매우 엄격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간 정부는 민영화는 곧 개혁이라는 등식에 의해서 민영화를 줄기차게 추진해왔다. 최근에는 국가기간산업 중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전력에 대해서까지 민영화 플랜이 나왔다.
그런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전력이 민영화된다는 사실에 대단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전력이 민영화된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최근 일어난 단전사태를 보아도 그렇다.
또 대처리즘을 모방해서 국영기업을 해외에 매각한 아르헨티나에서 정부 기능이 외국기업에 넘어가 국민 보호마저 어렵게 된 사정을 보아도 그렇다.
대처에 대해서 '수백년간 쌓아온 국민재산을 민간독점으로 넘기고, 그 결과로 고소득층에게 세금감축이라는 선물을 주었을 뿐'이라고 혹평하는 학자의 견해가 허튼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공기업도 재벌과 마찬가지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공기업의 개혁 목표는 공영성 강화와 효율성 증대일 것이다.
정부소유라는 점만으로 공영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서 전체국민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는 의지와 시스템을 갖는 것이 공영성 강화의 길이다.
사기업이 1인 총수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민영화한다고 하여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또한 현재 사기업의 효율성이 공기업의 효율성보다 높다는 것도 확신하기 어렵다. 더구나 효율성은 공공성과 배치될 수 있어서 효율성이 공공성 감축을 상쇄할 정도로 매우 커진다는 예측이 가능해야만 민영화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영리추구는 공공안전보장과 양립할 수 없다.
민영화 초기에 수익성이 오르는 것은 초기투자자금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잠시동안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라는 지적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윤동기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회보장분야의 의료보험 국민연금이나, 국민의 생활에 필수적이고 대체가 불가능한 전기 가스 수도 등은 정부기능의 기본으로서, 이를 사기업의 영리추구에 내맡기는 것은 정부의 존재조건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외환위기상황에서 나라 재산이라도 팔아 나라 빚을 갚기 위해 공기업 해외매각까지 검토가 되었던 것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한상황에서 검토되었던 것으로 끝나야지, 그것이 완수해야 할 개혁과제처럼 취급되는 것은 본말전도이다.
외국기업이나 국내재벌, 이해집단의 극성스런 로비와 신자유주의만을 추종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견해에 정부정책이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 국민의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활동이 활발해져야 하고, 언론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박주현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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