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자제품에서도 기술종속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전자업체들은 디지털 제품 분야에서만큼은 아날로그 후발주자로서 겪었던 설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으나, 기술력의 차이를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40%의 점유율을 보인 DVD(디지털 다기능 디스크)플레이어는 국내 업체들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디지털 가전. 그러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DVD플레이어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본 소니, 도시바, 히다치 등에 기술로열티로 원가의 10% 정도를 지불하고 있다.
디지털 기록방식인 DVD-램, DVD-RW 방식의 원천기술 300여 가지를 일본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전자 디지털마케팅팀 관계자는 "30만원대의 보급형 DVD 플레이어가 보급되면서 기술로열티 부담이 점점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세계 시장규모가 220만대에 달했던 디지털TV의 경우, 제품의 3대 핵심기술인 MPEG- 2, AC3, VSB 등 영상, 음성, 전송기술을 모두 해외업체가 보유하고 있다. LG전자가 몇 년전 인수한 제니스가 디지털 전송방식인 VSB 기술을 보유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아니다.
대표적인 수출품목인 이동전화 단말기도 로열티 지급이 많은 디지털 제품중 하나다.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기술을 보유한 미국 퀄컴사에 지난 5년간 국내 업체들이 지불한 로열티는 7,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밖에도 디지털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등의 핵심기술 역시 대부분 일본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내 전자업계가 제품 생산을 위해 지불한 기술 로열티는 1조원 이상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총 169건의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올해 기술 로열티로 낼 돈은 8,000억원을 상회한다.
LG전자는 지난해 19건의 기술도입계약을 맺었으나 기술 수출은 3건에 그쳤다. 현대전자는 휴대폰 생산원가의 50% 정도를 기술 로열티로 지급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나 한국전자산업진흥회에 국내 업체의 로열티 지불에 관한 통계가 없는 등 기술종속 문제에 관한 경각심이 없는 것도 문제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 실장은 "기술개발보다 기술도입이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경영진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기술종속은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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