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어 새로운 화장품 색상이 발표될 때면 회사마다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하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봄에는 분홍, 가을엔 브라운이 제격이라지만 미묘한 톤까지 비슷하니까요. 패션업체들도 유사한 유행아이템을 동시에 쏟아냅니다.
회사마다 같은 유행 전망을 근거로 상품을 개발하는 탓이지만 업체들도 '혼자 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붐을 조성하고 이 바람을 타야 시장 자체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치열한 경쟁으로 함께 망하는 실례도 많습니다. 수년 전 '레티놀 전쟁'이 대표적이죠.
노화방지기능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레티놀 화장품은 한때 "우리 것이 진짜 레티놀 성분이다"라며 치열한 공방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레티놀 성분을 직접 합성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두 세 곳 뿐입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레티놀을 안정화하거나 레티놀 유도체를 만드는 데에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이러한 차이점은 낱낱이 공개됐고 법정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진짜 레티놀 화장품'을 잘 골라 쓰게 됐나요? 그보단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다" "골치 아파 안 쓴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업계 전체의 손해가 된 거죠. 마치 어떤 회사 녹즙기에서 쇳가루가 나온다는 비방 탓에 녹즙기 시장 전체가 위축된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이미지손상을 회복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립니다. 다른 업종의 경우도 지나친 경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미지를 먹고 사는 패션ㆍ화장품 업계는 더욱 손해가 치명적이죠.
"인상은 나쁘지만 물건은 좋다"는 논리는 여기선 성립하기 힘듭니다. 되도록이면 분쟁을 자제하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사가 개발한 제품을 경쟁사가 그대로 카피해 시장에 내놓거나 전속모델과 불화가 있어도 선뜻 법적으로 대응할 생각은 않습니다. "소문 나면 모두 손해"라는 겁니다.
오히려 경쟁사의 제품경향을 함께 홍보하는 일도 있습니다. 붐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싸움은 계속됩니다. 제품을 베낀 업체에 '경고성 공문'을 보내고, "우리도 베낀다"며 똑같이 되갚아 주거나, 해외여행 경품에 다이아몬드로 경품을 놓는 일입니다.
한 관계자는 사세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피를 흘리고 뼈를 깎을지라도" 말입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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