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떠났음을 알리는 라마승들의 엄숙한 조의(弔儀)풍경, 칼을 들고 시신 앞에 선 거구의 천장사, 시신을 기다리고 있는 100여 마리 독수리들.망자(亡者)의 몸을 독수리에게 바치는 티베트 지방의 천장(天葬)풍습은 현지인들조차 유족만 볼 수 있는 금단(禁斷)의 현장. 이 모습을 담은 사진작가 박하선(朴夏善ㆍ 46)씨의 사진이 지난 달 중순 세계적 권위의 44회 월드프레스포토상 '생활풍습 스토리부문'3등상을 수상했다.
수상작 발표 당시에는 미얀마에서 수상가옥을 찍고 있었던 박씨는 며칠 전 귀국했다.
"기록이 없는 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달려들었지만 막상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피와 살점이 렌즈까지 튀어오르던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쭈뼛합니다."
박씨의 원래 직업은 항해사. 74년 목포해양대를 졸업하고 미국과 일본을 횡단하는 외항선을 10년간 타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바다를 찍게 됐다. 그러나 단조로운 바다풍경에 싫증나 89년 육지 사람들을 찍는 사진작가로 변신했다. 이후 박씨는 시베리아 동토 마을, 남미와 히말라야의 산간 마을 등 10여년간 40~50개국 오지의 풍경들을 찍어 왔다. 한 겨울의 실크로드를 헤매기도 했고 안데스 산맥을 종주하는 등 오지만 찾아다니며 삶의 신비를 보여준다는 천장을 찍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중국당국은 70년대 유럽의 사진작가가 이를 야만적 풍습으로 소개했다며 외국인의 접근조차 금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수소문 끝에 94년 중국에서 만났던 승려의 도움으로 간신히 천장이 행해지는 사원을 알아내고 사원 주지(구미감포)의 허락도 받았지만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중국인으로 가장하거나 '송장 치우기'만 기다리며 며칠동안 천장터에서 잠복하기도 했다.
97년 10월과 지난해말 두 차례에 걸쳐 티베트 동부 캄 지역의 사원 부근 천장터에서 유족들에 의해 사진기 두 대가 박살나가면서 찍은 박씨의 사진은 월간 지오 97년 12월호에 일부 소개됐으며 4월23일 시상식이 열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전모가 공개된다.
박씨는 "끔찍한 모습과는 달리 천장은 마지막 남은 몸뚱아리조차 자연에 베푼다는 정신이 깃들어있는 풍속"이라며 "웃으며 장례를 치르는 유족들을 보며 깨달은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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