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경영을 공부하는 대학생입니다. 얼마 전 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1969년 대한항공기 납치사건때 납북된 여승무원의 사연을 보았습니다.보도에 따르면 기체와 승객이 돌아왔다고 했는데 기장이 북측에 억류된 상태에서 어떻게 비행기가 돌아올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윤진ㆍ미국 일리노이주 카본데일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당시 납북됐던 대한항공 YS-11기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한항공 홍보실 권웅민 과장은 "대한항공공사라는 국영기업이 대한항공으로 민영화한 1969년 그 해 일어난 일이어서 당시 관계자는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기록 등을 조사해본 결과 기체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승객 39명과 함께 기체가 돌아왔다는 평양 공동취재단(2월 28일자)의 보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69년 12월 11일 강릉을 출발, 서울로 향하던 YS-11기의 조종실에 승객을 가장한 간첩 조창희(趙昶熙)가 침입해 일어났으며 납북 66일만인 70년 2월 14일 승객 39명이 판문점 자유의 다리를 통해 걸어서 남한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체 탑승자 51명(승객 47명 승무원 4명)중 기장 부기장 스튜어디스(2명) 승객(8명) 등 12명과 기체는 억류됐지요.
억류된 비행기는 대한항공이 당시 일본에어로컴퍼니로부터 1만8,000 달러에 전세 낸 것입니다. 대한항공은 YS-11기의 보험료 130만 달러를 당시 한국재보험공사와 동양화재보험에 들었는데 이 보험사들은 다시 영국의 로이드 계열인 라이언 로와 클랙슨에 재보험을 들었다고 합니다.
대한항공은 비행기가 억류되자 영국의 두 보험회사에서 115만2,500 달러, 국내보험사에서 14만5,000달러의 기체 보험금을 받아 비행기를 빌려준 일본 항공사에 배상했다고 합니다.
납북사고 5년이 74년 당시 기체와 관련한 후속 보도에 따르면 납북됐던 YS-11기는 3년 넘게 북한 상공을 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2년 말 북한에서 일본 항공사인 젠니쿠(全日空ㆍANA)에 한 비행기의 정비를 의뢰했는데 이 비행기가 바로 납북된 YS- 11기여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이지요.
납북된 YS-11기와 동종기. 당시 대한항공은 3대의 YS-11기를 보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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