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어디 일할 데 좀 없나요?"'서울 취업박람회'가 열린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섬유빌딩 전시장. 201개 중소기업에서 정규직도 아닌, 인턴사원 789명을 뽑는 현장이었지만 무려 7,000여명의 구직자들이 몰려 450평 규모의 실내를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메웠다.
0.5평 크기의 업체 부스마다 면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계단은 물론 건물 밖 인근 벤치에까지도 이력서를 작성하는 인파가 넘쳐났다.
주최자인 서울지방노동청은 당초 3,500명분의 팸플릿을 준비했다가 밀려드는 구직행렬에 놀라 추가로 인쇄물을 주문하고, 일부는 현장에서 급한대로 복사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 내팽개친 학력 자존심
태반이 대졸 미취업자 및 실직자들인 참가자들은 저마다 딱한 사정들을 털어놓으며 채용을 '애걸'했다.
2년전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을 못했다는 박모(30ㆍ서울 중랑구 면목동)씨는 "지금까지 쓴 취업원서만 모아도 책 한 권 분량"이라며 "그동안 면접을 보기 위해 형 옷을 빌려 입고 다녔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연신 담배 연기만 뿜어댔다.
올해 서울소재 대학을 졸업한 김모(28)씨는 "취업난을 예상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주위에 정작 붙는 사람도 없어 포기했다"며 "장기 실업자 신세가 눈에 보이는 마당에 무슨 일이든, 어떤 조건이든 가릴 형편이 아니다"라고 절박한 표정을 지었다.
■ 지방대생들의 무작정 상경행렬
충북 모 대학을 졸업한 권모(29)씨는 "지방에서는 도저히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 친구와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자취하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자칫하다간 영원히 사회에서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전남소재 대학을 나왔다는 임모(22ㆍ여)씨도 "일주일 전 처음 서울에 올라와 언니집에서 눈치밥을 먹고있다"며 "학과 친구들 대부분이 상경해 나처럼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 더 절박한 실직자들
올해 초 외국인회사의 반도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실직한 배모(46ㆍ경기 의정부시)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왔다"며 "아내와 딸 둘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면 후진국에라도 나가 벌이를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김모(29)씨도 "그동안 인터넷 등을 통해 100여군데 직장을 알아봤고 면접을 50번 넘게 봤지만 아직 취직이 되지 않고 있다"며 "오늘 3, 4개 업체에 이력서를 낼 계획이지만 솔직히 희망은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
행사에 참가한 ㈜한신PM 이상근(37) 인사부장은 "구직자들 대부분이 많이 지쳐있고 자신감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씁쓸해 했다.
장래준기자
rajun@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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