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하는 연예인은 많다. 그 중에서도 요즘 이병헌(32) 만큼 두드러진 스타도 드물다.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에서 이수혁 병장 역의 비극적 잔상과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지독한 로맨티스트 인우 역의 여운을 지닌 채, 이번에는 드라마로 들어온다.
이병헌은 그 전에도 영화 '내 마음의 풍금' 과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순수하고 연민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는 SBS가 14일부터 방송하는 수목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윤성희 극본, 이장수 연출)에서 일련의 영화를 통해 쌓은 이미지를 깨려 한다.
면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는 인터뷰 시간이 되자 강렬한 느낌의 검은 가죽 점퍼로 바꿔 입었다. 이병헌이 가요계를 무대로 한 네 젊은이(이병헌 류시원 최지우 이정현)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이번 드라마에서 맡은 캐릭터는 강렬하면서도 복합적인 인물이다.
"이전 작품의 캐릭터가 종전과 다르니 작업이 오히려 편합니다. 다른 사람을 재창조해야 하는 배우가 한가지 이미지만 고집한다면 배우라고 말할 수 없지요."
그가 예전의 이미지를 미련없이 포기한 이유다. "40여일 동안 촬영해 4회분을 찍었는데 이제야 제가 맡은 캐릭터를 알 것 같아요" 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날들' 에서 이병헌이 맡은 캐릭터는 소화해내기가 어렵다.
음반사 사장의 아들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음반 업계 황태자로 군림하는 민철 역인데 모든 사람에게 잘 하지만 이복 동생(류시원)에게는 냉혈한처럼 대하고 동생의 연인(최지우)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지요. 민철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연성 있고 시청자가 공감할 만큼 악한 성격을 드러내기가 힘드네요."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감독과 상의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애쓰고 있다고 했다.
"이병헌은 청춘 스타를 벗어난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는 이장수 PD의 말처럼 그는 이제 스타가 아니라 연기자 이병헌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사에 감정과 메시지를 절묘하게 싣고, 연기에 육체적 동작보다는 감성을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행이나 시청률에 신경을 안 써요. 평생 연기를 하고 싶으니까요. 배우는 늘 우물처럼 샘솟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저 배우는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이제 없다' 는 말을 들을 때 배우로서 존재의미가 사라지는 거지요." 큰 입을 벌려 웃으며 던지는 말이 연기생활 10년이 그냥 흘러온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이병헌의 외모와 이미지 속에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의 정서와 감성들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대중은 그에게 환호한다.
깎은 것처럼 잘 생겼지만 기름기가 없어 질리지 않고,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비어있어 등이라도 두드려 주고 싶은 배우가 이병헌이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드라마 출연 때문에 베를린영화제에 가지 못했습니다" 라고 아쉬워하는 모습은 그의 관심이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더 쏠려있다고 느끼게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모두 할 생각이지만 앞으로는 영화에 주력할 겁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은 좋은 영화와 훌륭한 배우를 기억하니까요."
그가 이런 욕심을 접어 두고 드라마 '아들다운 날들' 에서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뒤흔들지 기대된다.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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