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민주당은 행정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특별시와 광역시의 자치구를 합치는 등 전국의 행정구역 통폐합을 추진중이다.이에 대해 지금의 행정구역이 주민들의 생활 환경에 맞지 않고 낭비 요인이 많기 때문에 통폐합이 필요하다는 찬성론과 통폐합이 행정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공무원 비리에 대한 주민 감시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반대론이 맞서고 있다.
[찬성] 생활권 불일치 ·재정불균등 문제 심각
현행 기초자치단체의 구역은 조선말기와 일제 초기에 획정된 이후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기본골격이 유지되어 왔다.
이러한 경직된 행정구역에 반해 주민 생활권은 국토개발 및 도시화ㆍ공업화에 따라 크게 변모, 양자간에 심한 불일치 현상을 유발하고 국가운영상의 경제ㆍ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키고 있다.
따라서 사회ㆍ경제적 환경 변화를 수용하여 생활권과 행정구역을 일치시키고, 행ㆍ재정적 능률성을 제고하여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현행 지방행정구역은 개편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시ㆍ군 행정구역상 문제의 핵심은 생활권 불일치와 재정불균등이다. 과거 5만 이상이 되는 읍은 시로 승격시켜, 동일한 생활권임에도 불구하고 중심도시인 시(읍)와 배후지역인 군이 인위적으로 분리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1994년 이후 단행된 시ㆍ군 통합으로 상당부분 해소되긴 하였으나, 행정구역으로서의 시와 군을 단순히 통합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일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권역에서는 마치 포도송이와 같은 세분화한 자치구역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는 정치적 파편화의 한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시와 시간의 통합도 요구된다. 시ㆍ군의 재정력과 지역경쟁력이 취약하다는 것도 현 행정구역의 문제점이다.
특히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시ㆍ군이 전체 시ㆍ군ㆍ구의 62%나 되어서 취약한 지방재정이 지역경쟁력 제고에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시ㆍ군간 행정규모의 격차가 심각해 규모가 작은 시ㆍ군은 도시기반시설도 제대로 건설할 수 없는 형편이고, 인구가 작거나 재정력이 취약한 시ㆍ군일수록 사용료나 수수료가 높아서 주민부담이 가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치구의 경우, 행정구역상의 문제점은 보다 심각하다. 특별시 광역시 등 대도시의 구는 독자적인 역사성이나 공동체의식을 형성하고 있지 못하다.
좁은 지역에 인구가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는 대도시가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에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다수의 자치구가 존재함으로 인해 대도시 관리의 비효율성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치구의 면적을 확대하여 숫자를 감소시킴으로써 자치구간 조정의 필요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치구의 통합은 지방의원의 수를 감축하는 효과도 가져 올 것이다. 물론 자치구가 몇 안 되는 광역시에까지 일률적인 자치구 통폐합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초자치단체 구역의 개편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활권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재정력이 약한 군과 군간의 통합은 자칫 더 큰 부실을 낳을 수도 있으므로 통합을 통해 재정력의 증대를 가져올 수 있는 자치단체를 신중하게 선별하여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가 통합의 기준과 원칙을 정하더라도 최종적인 판단은 결국 해당 지역 주민의 의사에 따라야 할 것이다.
홍준현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반대] '95년 통합' 검증없이 성급한 개편 무모
1995년 1월 경기 미금시와 남양주군이 남양주시로 통합되는 등 인접 시ㆍ 군이 합쳐져 35개의 시가 탄생했다.
이 후에도 부분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가운데 통폐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서울과 광역시의 자치구 몇 개를 합치거나, 자치구는 그대로 두거나 소폭 하향조정하되 구청장을 임명직으로 전환해 준자치구화하자는 등의 의견이 많다.
특성 차이가 거의 없고, 수요가 동질적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세분화해 있어 행정비용의 증가 등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또 자치구 상호간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광역적 도시행정수요를 충족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광역체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광역시를 지정시(도쿄의 부속 시처럼 일정한 자치권은 갖되 상위단체에 소속되는 시)로 전환하거나 도가 규모가 너무 크니 분할하자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 광역계층을 그대로 두되 기능을 조정, 기초단체와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치구 구역조정문제만 하더라도 도(道)와 광역시의 구역 및 기능조정과 연관지어 논의돼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아직까지 1995년 시ㆍ군 통합의 결과로 얻은 것이 무엇이고, 잃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불과 몇 년 전에 시행한 제도개편의 성과조차 구체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행정의 기본 틀을 또 다시 뜯어고치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전문가 집단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십년이 넘도록 행정계층과 구역개편문제를 연구하는 외국의 예를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현재 드러나고 있는 부분적인 문제들만을 이유로 행정구역을 통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성급하다는 느낌이다.
통합론자들은 행정구역 통합을 통해 예산절감과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자치단체라도 청사유지비 등 기본 경비는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개의 행정구역이 하나로 통합되면 그 만큼 경상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기업과 달리 자치단체 업무는 대부분 노동집약적이어서 기계로 대신하는데 한계가 있다. 예컨대 아무리 자본투자를 늘여도 사회복지나 보건위생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여전히 필요하다.
따라서 행정구역 확대로 인한 비용절감효과는 미미한 반면 주민통제의 약화로 인한 낭비와 손실의 가능성은 커진다.
행정구역 통폐합과 관련해 또 한가지 염두에 둘 것은 기초자치단체의 규모는 가급적 작게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행정구역의 규모가 커지면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지역주민의 다양한 욕구를 파악하기 어렵게 되고, 주민들은 공무원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마음 놓고 선심성, 낭비성 지출을 할 수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주민과 정부의 거리가 멀어 주민들의 감시가 약하기 때문이다.
김종순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행정구역 변천사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의 체계가 잡힌 것은 일제시대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군(郡)이나 면(面)은 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군 등의 면적과 인구를 식민 지배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조정했다.
정부 수립후인 1948년 11월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됐는데 이 법에 따라 1시(서울시), 9도, 14부, 133군, 1도(울릉도),9구, 73읍, 1,456면의 체제가 완성됐고 지금까지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다. 49년 8월에는 지방자치법이 제정됐는데 이 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계층구조가 도와 서울특별시, 시ㆍ읍ㆍ면 등 2종으로 구분됐다.
50~60년대에는 제주, 충주, 삼천포 등이 잇따라 시로 승격했다. 63년에는 도시화가 많이 진행돼있던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돼 독자적인 도시계획과 발전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81년에는 대구와 인천이, 86년에는 광주가, 89년에는 대전이 각각 직할시로 승격했다. 직할시는 95년 광역시로 명칭이 바뀌는데 이때 부산에 기장군이, 인천에 강화군과 옹진군이, 대구에 달성군이 편입되는 등 구역도 조정됐다. 95년부터는 도시와 농촌을 통폐합한 도농복합형태의 시가 탄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 현재 전국의 행정구역은 1특별시, 6광역시, 9도, 72시, 91군, 69자치구에 이른다. 또 21일에는 경기 광주군과 화성군이 시로 승격한다.
행정구역 개편의 명분은 행정구역과 주민 생활권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꾀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행정구역이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선거구와 맞물리기 때문에 행정구역 조정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은 정치권이었다.
또 도농통합형태의 시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뺏기고 주민세금이 늘어나며 혐오시설이 들어설 것을 우려한 농촌지역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성남시나 고양시처럼 기존 농촌지역과,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신도시가 혼재한 곳에서는 아파트촌 주민들이 '문화적 차이' 등을 들어 분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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