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의 흥분을 식힌 이산가족들은 27일 혈육의 사진과 선물 등을 꺼내놓고 반세기 세월이 만든 벽을 허물며 정담을 나눴다. 이들은 "통일될 때까지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다짐으로 짧은 만남을 위로하며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수남이는 왜 없어. 한번 보려고 50년을 수절하며 살았는데.."
27일 평양 고려호텔 1921호실. 어린 아들과 두 딸을 평남 강서의 친정집에 남겨 놓고 홀로 남으로 왔던 김유감(76ㆍ경기 광명) 할머니는 두 딸을 마주하고도 아들 김수남(59)씨만 찾았다.
김 할머니는 "기계공학 기사로 중국에 출장 가 오지 못했다"는 딸들의 설명이 믿기지 않는 듯 "며느리와 손자라도 나와야 할 것 아니냐"고 울부짖었다.
김 할머니는 준비해 온 선물도 풀지 않은 채 "내일이면 여든인데 여기까지 와 아들도 못보고 가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며 오열을 그치지 않았다.
○.이번 방북단에 포함된 이산가족 가운데 북에 있는 형수로부터 소송위임장을 받아 남한 법정에 제출하겠다던 A씨는 결국 형수를 만나지 못했다.
A씨는 "형수가 나오지 않아 준비해 온 서류에 사인을 받지 못했다"며 "다른 가족에게 부탁, 형수의 사인을 받아 일본이나 미국의 친척에게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1.4후퇴 때 A씨와 함께 월남한 형 B(지난해 사망)씨는 수십억대의 재산을 모았고 이 중 일부를 북에 있는 부인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를 희망, 남측에서 만난 부인과 갈등을 빚었다. 형의 유언을 지키려는 A씨는 형의 대리인 자격으로 남측 형수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낸 상태다.
○.지난해 1차 이산가족 북측 방문단장으로 서울에 왔던 류미영(79) 천주교 청우당 중앙위원장과 이번 이산가족 방북단에 포함된 사돈 손성근(79?ㆍ서울 송파구 신천동)씨의 만남이 추진됐으나 불발됐다.
대한 적십자사측은 "여동생을 만나러 온 손씨가 류 위원장과 사돈인 것을 알고 만남을 추진했으나 류 위원장이 최근 한덕수 조총련 의장의 장례식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류 위원장의 2남 3녀 중 넷째 딸인 최경애씨가 손씨의 큰 아들인 기현씨의 부인이며 이들은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가슴에 8개의 훈장을 단 국군포로 손원호(75ㆍ함북 회령)씨는 남에서 온 동생 준호(67ㆍ경북 경주)씨와 다시 만났다.
원호씨는 "장군님의 배려로 동생을 만나게 돼 너무 기뻐 어젯밤에는 술도 안 먹었다"며 동생을 힘껏 껴안았고, 동생 준호씨는 "우리 형님이 나와 많이 닮았다"고 즐거워했다. 준호씨는 형수 김춘경(70)씨를 보며 "형을 지켜줘 정말 감사합니다"는 말을 연발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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