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들의 존재도, 그들의 음악이 세계에 알려진 것도, 그들을 다룬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이 탄생한 것도.기적은 1970년대 초 한 미국 젊은이에게 건네진 카세트 테이프로 시작됐다. 기타리스트인 라이 쿠더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혁명가 체 게바라의 나라 쿠바의 몇 뮤지션들의 연주를 담은 그 테이프에 매혹돼 그 길로 아바나로 가 쿠바 음반들을 모아온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96년,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제3음악의 거장이 된 쿠더는 아프리카 뮤지션과 쿠바음악을 결합한 음반기획을 제안 받는다.
운명처럼 아바나를 다시 찾은 그는 1930,40년대 쿠바음악의 황금기를 구가했으나 이제는 노인이 된 뮤지션들을 하나 둘 찾아서 만난다.
슬픈 듯 깊은 눈동자의 백발 가수 이브라힘 페러(74).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대에서 물러난 그는 감성과 애수가 깃든 목소리는 여전하나 아바나 뒷골목에서 구두닦이를 하고 있었다.
쿠바음악사의 살아있는 전설 콤파이 세군도는 아흔 살이 넘은 나이에도 여섯째 아이를 낳으려는 열정과 '찬찬' 이란 신곡을 만들고 있었고, 1940년대 쿠바 음악계를 주름 잡았던 3대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인 루벤 곤잘레스(83)는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위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로 불리는 오마라 포르투온도, 비올라의 칸차이토, 루트 연주자 바바리토 즉흥연주의 대가 피오도 만났다.
모두 일흔을 넘긴 노인들은 스튜디오에 모여 단 6일 만에 편집 없이 라이브로 앨범 녹음을 끝냈고, 그 한 장의 앨범이 전세계에 쿠바 음악 열풍을 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들을 주축으로 한, 쿠바혁명 후 사라진 아바나 동부의 고급 사교장의 이름을 딴 '부에나비스터 소셜크럽' 의 탄생도 이렇게 이뤄졌다.
그들은 암스테르담 공연에서 관객에게 환희와 열정, 눈물과 웃음, 사회주의 혁명의 슬픈 뒷모습, 쿠바음악의 낭만과 자유의 힘을 보여주었다.
아브라힘이 "꽃들에 내 괴로움을 감추고 싶네/ 내 슬픔을 꽃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눈물을 보면 죽어버릴 테니까" 라는 노래에는 식지 않은 사랑의 가슴과 아픔이 묻어나고, 곱은 손으로 두드리는 루벤의 피아노 연주에는 공기조차 숨죽인다.
그들은 '고향의 노래' '칸델라'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를 함께 부르고 연주하면서, 지난 날의 길고 긴 시간들을 다시 부른다.
음악을 알고, 음악 속에 오랜 인생을 묻은 자들에게서 나오는 멋과 아름다움은 뉴욕 카네기홀은 물론 2월초 서울 LG아트센터까지 열광시켰다.
라이 쿠더가 이브라힘의 솔로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다시 아바나를 찾을 때,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이 따라 나서 그들의 현재와 과거 이야기를 담고, 녹음 장면과 암스테르담과 카네기홀 공연을 집어넣어 멋진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내놓았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도 이렇게 탄생했다. '베를린 천사의 시' 를 쓴 빔 벤더스 감독은 음악으로 쓴 위대한 인생을 보았다. 1일 개봉.
아브라힘, 오마라, 루벤(왼쪽부터).
이대현기자
leedh @ hk.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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