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기업 사원 정모(33)씨. 중산층 가정 출신에 소위 명문대를 나왔지만, 선만 보면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중매쟁이는 '머리가 벗겨져 나이가 들어보이기 때문'이라며 수술을 권했다.정씨는 20대 중반부터 소갈머리가 비기 시작해 지금은 눈에 띄게 벗겨진 상태. 앞머리가 없는 것보다 코믹해 보여 직장에서 놀림을 받을 때가 많다.
동기들과 술자리에 어울려도 꽤 나이 차가 있는 선배쯤으로 보는 경우가 흔하다. 정씨는 "대머리도 좋다는 여성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모발 이식수술을 받을 것인지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2 주부 이모(42)씨. 무모증인 그는 목욕탕 가기가 꺼려지는 것 말고는 크게 걱정해 본 적이 없다. 결혼생활 15년 동안 남편이 한 번도 문제를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IMF 때 실직하고 사업을 시작한 남편이 최근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자 은근 슬쩍 아내의 무모증 탓을 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남편의 억지주장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의 무모증에 신경이 쓰여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종아리나 겨드랑이의 털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오히려 노출이 심해지는 계절이 오면 털을 없애려고 애쓰는 젊은이들이 많다. 하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털도 있다.
머리털, 눈썹, 음모 등이 대표적이다.
▲ 머리털 이식
시중에는 털을 자라게 하는 약물과 여러 가지 민간요법이 이용되고 있지만, 역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털을 직접 심어주는 식모술이다. 머리털을 심는 원리는 나무를 옮겨 심는 것과 똑 같다. 머리털이 빠지는 것은 두피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머리카락의 생존력이 떨어지기 때문.
따라서 비교적 생존력이 강한 뒷머리의 남은 머리카락을 앞쪽 탈모 부위에 이식하는 방법을 쓴다. 대개 한 번에 1,500개 정도를 이식한다.
2,000개 이상 이식하는 방법도 있지만, 뒷머리의 모발을 많이 떼어내 흉터가 심하게 남는 문제가 있다. 시술은 6개월 정도 간격으로 두세 번 반복하는 게 좋다. 한 번 모발을 이식한 뒤 진행 경과를 보며 머리 모양을 다시 디자인하는 것이다.
최근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면 최소 2~ 3년 더 기다렸다가 수술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아직 머리가 빠지는 패턴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앞머리만 빠졌어도, 대머리가 진행돼 안쪽 머리가 함께 빠질 수도 있다. 만약 앞머리에 모발 이식을 했는데, 나중에 전혀 다른 패턴으로 대머리가 진행되면 보기에 더 안 좋을 수 있다.
수술은 전신과 국소 마취 모두 가능하다. 대머리인 경우 4시간, 그 외 부분은 1∼3시간 정도 걸린다. 우선 디자인을 하고, 수술 예정 부위를 국소 마취한 후 이식할 두피 조각을 폭 1.5∼2cm, 길이 8∼10cm 정도 떼어낸다. 두피를 떼어낸 자리는 봉합하는데, 피부는 늘어나는 속성이 있어 가는 선의 흉터가 남는 것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
모낭을 분리할 때 손상을 입으면 생착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시술이 끝나면 곧 귀가할 수 있으며, 수술 부위 치료에 2주 가량 걸린다. 수술 부위는 문지르거나 긁으면 안되며, 머리를 감아도 안 된다. 물이 튈 경우 가볍게 수건으로 눌러 물기를 없앤다. 머리는 2주 후부터 감을 수 있다.
심은 모발은 3주일이 지나면 일단 빠지기 시작하지만 모낭 자체가 탈락되는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이 충격에 의해 휴지기에 들어갔을 뿐이다. 빠진 머리는 6개월 이전까지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 이 때 나오는 것이 영구적으로 이식한 머리카락이다.
▲눈썹 이식
눈썹을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돈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 몸에는 눈썹과 같이 짧으면서도 굵은 털이 난 부위가 없기 때문에 머리털을 주로 이식한다.
머리털을 심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근을 심어주는 방법은 같지만 모근을 하나 하나씩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심어주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눈썹 이식에 필요한 머리털은 한쪽 눈썹에 300개 정도. 대머리 치료와 달리 한 번에 치료가 가능하다. 주로 머리 가운데 가장 얇은 털을 뽑아 이식한다. 모발을 이식한 것이므로 계속 잘라내지 않으면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라는 부담이 있다.
▲수염 이식
수염은 남성의 권위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고 다녔고, 수염 깎는 것을 형벌이나 모욕으로 여기기도 했다.
요즘은 수염이 적다고 고민하거나 이식하려는 남성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수염이 무성하거나 구레나룻이 심한 경우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수염 부위에 있는 흉터나 언청이 같은 자국은 식모를 통해 감출 수 있다.
▲음모 이식
음모(陰毛)하면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 몸에 난 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여성의 경우 초경을 맞는 12∼13세부터 음모가 나기 시작해 사춘기가 지나는 17∼18세 때 거의 다 자란다. 무모증은 남성에겐 거의 볼 수 없고 주로 여성에게 나타난다. 대부분 유전적인 성격이 강하다.
음모는 성관계 때 피부의 마찰을 줄여주고 성적 유인물질을 발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음모가 없다고 해서 성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관상, 그리고 통속적인 관념상 부정적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무모증 여성들의 고민은 상상을 초월한다. 결혼을 앞둔 여성들은 스트레스가 심해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무모증 여성의 경우 음모 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 대개 뒷머리의 두피를 떼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옮겨 심는 방법을 쓴다. 대략 500~1,000개 정도의 머리털을 옮겨 심으면 시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환자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음모의 모양을 디자인하고 털의 특징을 살려 방향과 각도를 자연스럽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일단 이식한 털은 한 번 빠진 후 4개월 정도 되면 영구적인 음모가 나기 시작한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신체 이미지 만족도 조사
모발은 사람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헤어 스타일이 변하면 그 사람의 이미지도 변한다.
대머리 환자들은 자신의 이미지에 만족하지 못해 사회생활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쉽다. 경희대병원 탈모증클리닉 심우영 교수팀은 최근 국내에선 처음으로 대머리 환자 192명을 상대로 신체 이미지 만족도를 조사했다.
국내 대머리 환자의 연령층은 30세 이하가 79.7%, 평균 연령 27세였다. 탈모는 90.6%가 30세 이전(평균 24세)에 시작됐다. 전체적인 외모에 대해선 90.6%가 '보통' 또는 '만족한다'고 긍정적으로 답한 반면, 모발 상태에 대해선 92.2%가 불만을 나타냈다.
60.5%는 외출할 때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신경을 쓴다고 답했고, 34.9%는 모자나 가발을 사용했다. 놀림 받은 경험은 69.8%, 나이 많은 사람으로 오인 받은 경험은 45.3%였다.
대머리로 인해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응답한 경우가 55.7%로 절반을 넘었고, 미혼 대머리 환자의 89.3%는 결혼에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탈모에 대해 관심을 보일 때 82.8%가 수치심을 느끼는 등 정서장애를 호소했다.
대머리 치료정보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우는 79.7%나 됐지만, 막상 병원 치료경험이 있는 환자는 17.2%에 불과했다. 60.9%는 화장품, 건강보조식품, 모발관리센터 등 비전문적인 방법에 의존했다.
심 교수는 "오히려 탈모증이 심하지 않은 20대 젊은 환자들이 외모에 대한 불만과 수치심, 결혼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고재학기자
hoindol@hk.co.kr
■약물치료는 어떻게…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먹는 대머리 치료제는 '프로페시아'가 유일하다. 2년 이상 복용한 환자의 66%에서 탈모가 정지됐고, 36%는 만족스러운 효과를 본것으로 나타났다. 다국적 제약사 그락소스미스클라인도 '두타스테라이드'라는 약을 개발 중이다.
임상시험 결과 두피 모낭에서 탈모를 일으키는 남성호르몬(DHT)를 차단하는 효과가 프로페시아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방에서는 신장기능이 약하거나 기혈(氣血)이 부족하면 모발이 약해지고 누렇게 된다고 본다. 신장의 기(氣)를 돋우고 머리카락을 나게 하는 대표적인 한약은 하수오(河首烏). 머리카락을 윤택하게 하고 까많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가정에서 물 1ℓ에 하수오 20g을 넣고 30분 정도 끓인 다음 수시로 마시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산딸기, 토사자(나무에 기생하는 메꽃과의 씨앗)도 대머리 치료에 효과적이다. 동의보감에는 하루 4~5차례씩 2개월 이상 손바닥을 열이 나도록 비빈 후 두피를 마사지하면 탈모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다.
신장기능이 약하거나 피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생기는 일반적인 대머리 증세에는 음혈(陰血)을 보하는 사물탕, 육미지황탕 등이 주로 쓰인다. 신명한의원 김양진 원장은 "신장기능을 돋우는 한약요법도 도움이 되지만, 정신적인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풀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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