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광호의 시 월평 / '현대시학' 신춘문예 당선자 신작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광호의 시 월평 / '현대시학' 신춘문예 당선자 신작시

입력
2001.02.27 00:00
0 0

조금 때늦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올해의 신춘문예에는 몇 가지 잡음이 있었다. 신춘문예를 둘러싼 이 같은 소음들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화할 수 있다.우선 하나는 작년부터 두드러진 문학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제기의 연장에서 볼 수 있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익명의 대중이 참여하는 사이버공간의 활성화이다.

두번째는 신춘문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아직 식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문학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의 두터움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신춘문예는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많은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고 그런 면에서 문예지의 신인 공모와는 투고작의 양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당선작의 수준을 보장해주거나 문학에 대한 깊은 열정의 확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는 창작 욕구가 독서의 욕구를 압도하는 시 장르를 둘러싼 기이한 문화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시 전문 월간지 '현대시학'은 2월호에서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당선작품과 신작 시를 함께 싣는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이 특집을 읽으면서 우선 느낀 점은 전반적인 미학적 보수화 경향이다.

실험적인 작품이나 새로운 문화적 환경으로부터 촉발된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정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에 의존한 작품들이 두드러졌다.

또 하나는 당선작에 비해서 신작시가 더 많은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이다.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시간적 여유의 부족 때문이겠지만, 신춘문예 당선시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남게 된다면, 시인에게는 가장 우울한 사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가혹한 미학적 자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은 신인은 신인이 아니다.

신작시 가운데 김지혜의 '현장(現場)'과 장만호의 '벚나무 아래서'는 나름의 시적 가능성을 발산하고 있는 작품들로 보여진다.

김지혜의 시는 당선작에서도 발휘된 바 있는 심도있는 묘사력이 다시 주목된다. 시의 전반부 '삼십 촉 전구의 뿌리'를 뽑아내는 시적 화자의 행위에서 그는 '뿌리의 힘은 생각보다 거세다'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 사이로 화자가 다시 발견한 것은 '바퀴벌레의 빈 알집'이다. '머리통을 붙들고 그토록 끈질기게 버팅기던 힘은/ 뿌리가 아니라 뿌리의 주변이었던 것!'이라는 또 다른 진술이 이어진다.

이 역전적 발견이 암시하는 것은 '현장의 텅빈 힘!' 사건의 흔적으로, 현장의 존재감이다. 느낌표의 과다한 사용이 가져오는 어조의 과잉이 아쉽기는 하지만, 부재 안에 깃들어 있는 사건성을 찾아내는 발견의 묘사력은 인상적이다.

장만호의 시는 재래적인 서정시의 어법에 기대고 있다. 그 비유 역시 비교적 익숙한 모티프와 연관되어 있지만, 이 시속에 '물'과 '불'의 대위적 비유법은 낯익은 어법을 새롭게 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여기서 '벚나무'는 물과 불의 생명력이 결집된 광휘로 타오른다. '물들은 일어나 한 그루 나무가 된다'라는 상징적 진술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생명력의 본질을 꿰뚫는다.

'제 몸을 바꾼 물들은 나무의 눈망울이 되'는데, 동시에 그 벚나무는 '제 몸을 날리는 차가운 불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다소 비유가 장식적이지만, 이 유려한 비유법이 사물에 대한 좀더 깊은 상상적 인식과 만난다면, 그의 '벚나무'는 우리 서정시들을 갱신할 시적 광휘를 발산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