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연구 초안이 모습을 드러내며 가장 주가가 오르는 분야가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이다.유전자정보를 질병 예견 등에 응용하려면 방대한 정보를 법칙화하는 고급 정보처리기술이 필요한 때문이다. 이것이 생물정보학자의 몫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컴퓨터를 모두 꿰뚫고 있는 생물정보학자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된다. 드물게도 선두그룹에 우리 연구자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MRC 랩에서 생물정보학ㆍ단백체학 연구실장을 맡고 있는 박종화(33) 박사다.
그는 게놈 연구의 장밋빛 미래를 손에 잡듯 전망하고 있다. "임상적용까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발병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는 첫 소프트웨어는 5년 뒤면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단편적인 유전정보는 천문학적으로 쏟아지고 있는데 이를 실에 꿸 생물정보학자들의 일손이 부족할 뿐이라는 것이다.
1997년 케임브리지대 생물정보학 박사, 하버드대 박사후연구 과정을 거친 그는 국내 대학과 연구소,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등의 자리 제안을 모두 마다하고 이 곳 케임브리지 MRC랩을 택했다. 연구환경이 가장 좋다는 이유에서다.
"연구비만 따지면 하버드 의대가 세계 최고입니다. 그러나 연구성과를 내지 못하면 곧 경쟁에서 패배하는 기업과 똑같은 대학분위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반면 MRC 랩은 아무 조건 없이 6년간 연구비를 지원합니다. 영국의 저력은 이런 겁니다. 당장 산업화는 늦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초연구는 누구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탄탄합니다."
박 박사가 첨단분야의 프론티어로 자리잡게 된 것도 역설적으로 유행을 좇지 않은 덕이다.
1986년 서울대 수의대 입학 후 긴장감 없는 대학분위기에 막연한 실망감을 느낀 그는 곧 군에 입대했고, 한 영국인 영어강사의 소개로 1990년 스코트랜드지역 애버딘대 동물학과에 입학했다.
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1994년 석사를 거치지 않고 케임브리지대 물리화학부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DNA 이중나선구조에 관심을 갖게 된 그가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 기사를 읽고 무작정 케임브리지대 교수에 편지를 띄운 것이 인연이 됐다.
그는 동료들처럼 화학을 부전공으로 택하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즐겼던 컴퓨터를 부전공함으로써 생물정보학의 시초에 발을 담갔다.
현재 그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작동하는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일반화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 단백질의 구조, 기능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이를 일반화한 연구는 아직 없다. 그가 궁극적으로 규명하려는 것은 '노화의 비밀'이다.
●케임브리지 MRC랩
케임브리지 MRC(Medical Research Council) 랩(Lab)은 '영국 생명과학의 메카'로 통한다. 1947년 X선으로 처음 단백질구조를 연구한 막스 프루츠에게 연구비를 지원한 것이 MRC랩의 첫 과제였다.
X선 실험이 가능한 덕에 1953년 왓슨과 크릭이 역사적인 DNA 이중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게놈시대를 이끈 DNA 염기서열 분석은 프레드 생거(영국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수행한 생거센터는 그의 이름을 딴 것)가 기초를 세웠고 밀스타인과 쾰러의 모노클로널 항체 연구도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 성과다.
MRC 랩의 구성원 대부분이 케임브리지대 교수, 박사, 학생들이지만 연구 예산을 MRC로부터 지원받는 별개 조직이다.
MRC란 영국 통상산업부 과학기술국(OST) 산하의 7개 연구이사회(council) 중 하나. 연구이사회들이 대학, 연구소, 개인 등에 연구비를 분배한다.
케임브리지 MRC랩은 MRC가 지원한 최초의 연구소이자 MRC의 명성을 높인 대표적 성공 사례다. 7개 연구이사회 중 의학연구이사회(MRC)와 생명공학ㆍ생명과학 연구이사회(BBSRC)가 지원하는 연구비는 5억 6,400만 파운드(약 1조원)로 총 연구 예산의 32%에 해당한다.
공공자금 외에 제약회사 등이 출연한 재단인 웰컴 트러스트의 연구비지원까지 합하면 영국의 생명공학 연구 투자는 훨씬 많다.
케임브리지 MRC랩은 분자생물학(LMB), 단백질공학(CPE), 인간영양학의 3개 유닛으로 구성돼 있으며 텔로미어, 바이러스, 알츠하이머ㆍ파킨슨병 등 질병 연구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색다른 것은 한 연구실 구성원이 2명부터 25명까지 소규모 그룹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대신 조직의 융통성이 커 공동연구나 통합 폐지가 활발하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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