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저지른 강간을 전쟁범죄로 인정한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의 판결로 전시에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됐다.ICTY는 22일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포차시에서 이슬람계 여성과 소녀들을 감금해 놓고 '인종청소' 목적으로 강간과 고문 등을 자행한 세르비아계 병사 3명에게 28~12년의 중형을 선고, 사상 처음으로 전시의 성폭행을 반 인류범죄로 단죄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2만여 명의 여성이 성폭행 당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특히 학교와 운동시설, 모텔, 가정집 등에 마련된 이른바 '강간 캠프'에서 많은 여성들이 세르비아계 병사들의 성적 노예가 되기를 강요당했던 포차시가 가장 심했다.
재판부는 이슬람계 여성과 소녀를 강간ㆍ고문하는 등 11가지 혐의로 기소된 드라골류브 쿠나라치 피고에게 강간과 폭행죄로 28년, 12세 소녀를 성폭행하는 등 4개 혐의로 기소된 라도미르 코바치에게 강간과 노예화죄로 20년을 선고했다. 또 15세 소녀를 강간한 조란 부코비치에게는 강간과 고문죄로 12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3월이후 계속된 재판에서 이들에게 피해를 당한 16명의 여성들은 칸막이 뒤에서 음성을 변조한채 자신들의 처참한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피고들은 범행을 완전히 부인하진 않았으나 피해 여성들이 스스로 파트너가 되길 원한 경우도 있다고 강변했다.
국제전범재판은 2심제로 운영되고 있어 이들은 원할 경우 항소할 수 있으나 전례로 보아 1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
주심인 잠비아 출신 폴로렌스 뭄바 판사는 판결문에서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이 성폭행을 '테러의 수단'으로 상용했음이 증거를 통해 드러났다"면서 "피해 여성들은 인간 존엄성을 강탈당하고 가축처럼 취급당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지금까지 전쟁의 그늘에서 묵인되어온 강간을 국제법정에서 범죄로 인정, 처벌한 첫 사례이다. 재판부는 보스니아에서 강간이 전쟁의 한 수단으로서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반 인류범죄로 유죄 판결을 끌어냈다.
성폭행은 이미 제네바협약 등에 범죄로 규정돼 있고 유럽에서는 반 인류범죄로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2차대전 후 독일의 뉘른베르크나 일본의 도쿄(東京) 등의 전범재판에서는 이 죄목으로 처벌된 사람은 없었다
또 이번 판결은 '노예화'의 범위를 한층 더 넓혔다. 뉘른베르그 전범재판소는 노예화의 문제를 강제 노동에만 국한시켰으나 이번 판결은 '성 노예' 도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에 포함시켰다.
한편 보스니아의 이슬람계 여성단체들은 "이번 판결은 가해범들이 저지른 범죄에 비하면 최소한의 처벌만을 내린 것"이라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라고 양형에 불만을 표시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U조정관 "결국 인도될것"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과연 국제전범재판소에 보내질 것인가.
밀로셰비치의 전범재판소 인도 여부를 놓고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유고 대통령과 전범재판소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발칸안정화협약의 이행책임자인 보도 홈바흐 유럽연합(EU) 조정관은 22일 유고가 밀로셰비치를 결국 인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홈바흐 조정관은 마케도니아 스코피예에서 열리고 있는 발칸경제회의에서 "유고는 밀로셰비치를 넘기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코슈투니차 대통령이 법률을 개정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슈투니차 대통령은 유고 헌법이 전범의 인도를 금지하고 있으며, 밀로셰비치는 어떤 경우에도 유고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유고 정부는 밀로세비치를 인도하라는 국제적 압력을 받아 현재 법률 개정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도 코슈투니차의 입장은 겉으로는 변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유고 정부가 3월말까지 국제전범재판소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경우 금융지원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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