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짐 쇼(50)가 벼룩시장이나 중고품 가게에서 구입한 그림들입니다. 2년전 사치 컬렉션에서 15만 달러(약1억 8,000만원 )에 구입하겠다고 제의 했지만 거부했습니다.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25만달러(3억 700만원)에 일괄 구입해 주었으면 싶어 현재 협상 중입니다."
영국 현대미술의 '과격하고 독창적인'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곳이라는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단편영화, 클럽컬쳐(학교 술집 문화), 전시회, 퍼포먼스, 연극 등 현대문화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분야를 통합해 보여주고 있는 ICA의 전시담당 부관장이자 큐레이터인 매튜 힉스를 만난 것은 그가 기획한 'Jim Shaw: Thrift Store Paintings'(2000년 9- 11월)의 전시장이었다.
Thrift Store 란 중고품 가게를 말하는 것으로, 전시된 그림은 한눈에 봐도 우리나라의 '이발소 그림' 같이 이상한 것들이었다.
미술작품으로 취급받는 것만해도 과분한 대접 처럼 보이는 조악한 그림(키치) 400여점이 뉴욕과 함께 21세기 세계미술의 지도를 그려 나간다는 런던의 최첨단 문화센터의 3개층을 꽉 메우고 있음은 무슨 의미일까.
더구나 그 그림들은 모두 팍스 아메리카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것들이었다.
"작품 하나씩 따로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형편없는 미술이죠. 작품을 낱개로 판매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체 컬렉션에는 중요한 컨텐츠가 담겨 있습니다.
1950- 60년대 미국 예술의 질, 작가의 의도, 작가의 권위, 작품자체의 수준, 큐레이터의 기획 과정, 컬렉팅, 작품 선정과 전시 방법, 모더니즘의 변화와 이에 대한 반작용 같은 것들이 회화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은 우리에게 모더니즘이 준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지만, 중고가게에서 얻은 미술은 보여지지 않는 것, 부패함까지도 보여주지요. 이 전시는 이러한 작품의 발견에서 전시까지의 분석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중에는 비틀스의 멤버였던 링고 스타의 초상화도 있고, 재클린 오나시스 등 미국 퍼스트 레이디를 그린 것도 있고, 미국화장품 'Breck Girls'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기이한 여성모델의 인물화도 있다.
돈이 없어 새 물건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미국의 중고품 가게나 벼룩시장에서 짐 쇼라는 아방가르드 작가가 5달러, 많아야 25달러를 주고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하나씩 수집한 작품들은 모두 무명의 아마추어 작가 작품이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구제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쓰레기가 돼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들에 대해 21세기 미술계는 하나의 '개념미술' 로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의 찬란함뿐 아니라 빈약함까지도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짐 쇼 컬렉션의 특징은 당시 미국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으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란 점입니다.
바넷 슈멘이나 마크 로스코 같은 당시 미국 미술계를 주름잡던 대가들의 추상화와 비교해 보면 여러 재미있는 분석도 나올 수 있지요."
컬렉터 본인도 작품 수집 한참 뒤에야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는 이 키치 작품들 중 일부는 심지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적어도 제정신에서 그렸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작가의 작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이 작품을 영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데미안 허스트를 발굴해내는 등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광고재벌 찰스 사치가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고 싶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튜 힉스는 이 작품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 같은 곳에 들어가야지, 상업적인 사치컬렉션의 작품 목록에는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작품을 사겠다는 사치의 마음도, 품위있는 미술관에나 팔겠다는 소장자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시회 도록에 밝힌 짐 쇼의 글을 통해 의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컬렉션에 대한 투자는 일종의 진정성에 대한 개념과 관계 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펑크나 랩, 테크노 예술은 매우 미국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지는 않다.
세상에 진실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진실한 것을 끊임 없이 추구한다. 중고가게 미술은 현대회화의 부정적인 면까지 보여주는 진실한 그림들이다."
우리 미술계에서 늘 푸대접받고 있는 많은 아웃사이더 작가들과 그들의 키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회였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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