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산 자동차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신 한국산, 일본산, 유럽산 자동차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독자적인 자동차 메이커가 없으면서도 일개 대학이 인공위성을 보유하는 등 이스라엘이 정보기술(IT)분야의 강자로 발돋움한 동력은 무엇인가.
텔아비브의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IT산업은 군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랍권에 포위된 긴장 속에서 생존을 추구해야 하는 이스라엘은 방위산업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 항공산업, 이스라엘 밀리터리산업 등 국영기업 뿐 아니라 이미지 프로세싱 분야의 엘비트(Elbit), 사이텍스(Scitex) 등 민간 방위업체가 이 같은 배경에서 태어났다.
실제 이스라엘이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데이터 보안, 인트라넷 보안, 무선통신기술, 이미지 프로세싱 식별 및 추적 등의 첨단 기술들은 바로 방위산업에서 파생된 기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간 IT기술과 산업이 일대 도약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1980년대 중반 이스라엘의 국산 전투기 생산계획인 라비(Lavi)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부터였다.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프랑스제 무기를 활용, 승리를 거두지만 아랍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프랑스는 이후 탱크, 전투기 등의 대 이스라엘 수출을 중단했다.
이스라엘은 1970년대 중반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라비 프로젝트를 추진하다가 10여년만에 막대한 비용 때문에 중단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수백명의 기술자들이 민간 기술시장으로 흘러나오면서 전투기 생산에 활용됐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IT산업이 꽃피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산업은 지난 3년간 다른 분야보다 3배나 높은 12%대의 고도 성장을 해왔다.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엔 정부의 시의적절한 정책이 있었다.
오나 베리 전 산업통상부 수석과학관은 "이스라엘 정부는 구체적인 장기계획 보다는 상황에 따라 융통성있는 대응으로 경제가 필요로 하는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1년에 도입된 기술인큐베이터와 1993년 출범한 요즈마 펀드이다.
1990년대 초반 민간투자자본이 취약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1억 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요즈마 펀드는 IT 기업의 급성장을 가능케 한 촉매로 작용했다. 요즈마 펀드는 3년간 9개의 파생펀드로 확대됐으며 이들 펀드는 170여개의 프로젝트에 1억3,000만 달러를 투자, 이중 58%를 회수했다.
당시 이들 펀드는 벤처업체에게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거나 아니면 퇴출되라는 식의 강력한 주문을 했으며, 단순한 금융 제공자가 아니라 기업운영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의 능동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배경하에 통신, 인터넷, 의료기기 분야의 창업기업들이 성장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의 벤처기업에 해당하는 4,000여개 '신생기업(Start up companies)'이 있는데 이들이 IT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하고 있다.
신기술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한 창업보육제도인 기술 인큐베이터도 이스라엘 IT 산업의 튼튼한 배경이다. 1991년에 도입된 인큐베이터는 1990년대 유입된 소련권 기술인력의 창업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산업통산부 수석과학관실의 리나 프리도 프로그램 담당자는 "현재 전국에 분포한 24개의 기술 인큐베이터에 2,500여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476개 프로젝트 중 50%인 239개가 창업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큐베이터 프로젝트 위원회는 창업주가 수출잠재력이 있는 혁신기술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지 엄격하게 심사한다"면서 "인큐베이터에 입주한 업체는 2년간 25만 달러를 지원받으며 이후 창업에 성공하면 매년 매출액의 일정분을 로열티 방식으로 회수한다"고 설명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軍은 첨단 기술의 산실"
"이스라엘 군은 첨단 기술의 산실."
이스라엘 군이 배출한 IT 인력이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괄목할 만한 비즈니스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을 두고 IT 전문잡지 '레드헤링'은 이 같이 표현했다.
이스라엘 군은 매년 전국 각지에서 컴퓨터와 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고교 졸업생 30명 정도를 뽑아 '탈피오트'라는 특별 교육과정에 입학시킨다.
탈피오트의 교육생들은 6개월동안 하루 14시간 이상씩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학, 물리학 등을 강도 높게 교육받으며 군의 핵심 기술 인력으로 태어난다. 짧은 기간이지만 탈피오트의 탄탄한 교육 프로그램은 미국의 유수 공대에 못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교육과정이 끝나면 이들은 정보부대에 배치돼 군사정보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 이스라엘 공군 산하 컴퓨터 센터인 '맘다스'의 구성원 대부분은 탈피오트 출신이다. 탈피오트 출신들은 군 복무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이론과 실제를 결합할 수 있는 능력과 조직 운영능력을 기르게 된다.
18세 이상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군에 입대하는 이스라엘 청년들은 군에서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이는 이후 창업 등의 경제활동에 중요한 자산이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이스라엘계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컴퓨젠은 최고경영자를 비롯 상당수 직원이 탈피오트 교육생 출신이다.
실시간 E-메일 교환이 가능한 ICQ 프로그램을 개발한 미라빌리스를 창업한 세피 비시거 등 4명의 청년도 군에서 인연을 맺었다.
미라빌리스는 창업 2년만인 1998년 아메리카 온라인(AOL)에 4억700만달러에 인수됐다.
■테크니온공대 디모테크 아미 로웬스타인 대표
"복잡한 절차와 오랜 투자결정 시간은 벤처기업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테크니온 공대의 인큐베이터 센터인 디모테크(Dimotech)의 아미 로웬스타인(사진) 대표는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에 기반한 창업 과정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웬스타인은 "디모테크는 테크니온 공대와 산업분야의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테크니온 연구 개발 재단(TRDF)'의 자회사이자 40여 개의 신생기업을 관리하는 지주회사"라고 소개했다.
실용적인 학풍으로 응용기술에 강한 테크니온 공대는 하이파 인근 카르멜산 정상에 위치해 있으며, 기초기술을 주로 다루는 키리야트의 와이즈만 연구소와 함께 이스라엘 기술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로웬스타인은 산업통상부 수석과학관실 산하의 인큐베이터센터가 정부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것에 비해 디모테크는 개인과 기업의 투자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디모테크는 단순히 신생기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정, 법률, 회계 서비스와 특허등록 등을 지원해준다"고 말했다.
디모테크는 일주일에 한번씩 투자자를 위한 설명회를 열고 있으며, 교수와 기업인 들은 성공가능성이 있는 사업 계획에 적게는 5,000달러에서 많게는 몇 만 달러씩 투자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 등 기술개발자가 아이디어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관련 분야의 기업인, 교수 등으로 구성된 회의에서 상품화 가능성이 있는 지를 검토한 후 투자여부가 결정된다.
로웬스타인은 매년 100여건 정도의 사업계획서가 제출되며 이중 3~5건 정도가 창업에 성공한다고 말했다. 디모테크에 둥지를 틀고 있는 기업들은 3~6명 정도의 소규모에서 출발, 상품화에 성공하고 수익이 생기면 인큐베이터를 졸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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