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넘버 원?" "패스는 드리블보다 중요하다!" "장린?" "쉬춘메이!" 삼성생명 여자농구단은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항상 이렇게 암호 같은 말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유수종 감독이 지난해 10월 부임하자 마자 건넨 훈련지침, 전략, 전술 등이 빼곡히 들어 있는 50페이지 짜리 '우승지침서'에 담긴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18일 챔피언결정 4차전을 앞두고 장충체육관을 나섰을 때도 "오늘은 꼭 이기고 돌아온다"는 말을 반복했다.
여자농구계에서 '미스터리맨'으로 불리는 유 감독이 여자팀을 처음 맡게 된 것은 1976년.
덕성여고를 80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자 이를 눈여겨 본 상업은행이 코치로 스카우트했다. 이때부터 그는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팠고, 실업팀에 유명선수를 빼앗긴 금융팀 사령탑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84년 춘계연맹전, 85년 전국체전서 정상에 섰지만 3년 뒤 감독이 된 이후는 우승과는 아예 인연조차 닿지 않았다.
정작 실력을 발휘한 곳은 국제대회. 92년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2년 연속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땄고, 국가대표를 맡고 난뒤 2년 전 아시아농구선수권 1위, 시드니올림픽 4강 등 걸출한 성적을 남겼다.
여자농구의 명문 삼성생명에서 첫 우승기회를 잡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제지간으로 불리던 박명수 한빛은행감독과는 경기 전날 저녁을 함께 할 만큼 돈독한 사이다.
유 감독은 "20년 동안 정성껏 가르쳤던 한빛은행을 이겨놓으니 영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라고 뒤늦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젠 연봉 1억1,000만원을 받고 새 자가용까지 마련하게 된 그는 "그동안 못 느껴봤던 우승의 기쁨을 이제부터라도 원없이 맛봤으면 좋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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