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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배 세계기왕전 26일 결승전 1국 / 수성이냐 혁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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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배 세계기왕전 26일 결승전 1국 / 수성이냐 혁명이냐

입력
2001.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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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피를 말리는 '수성(守成)'이다. '바둑올림픽'잉씨(應氏)배의 정상에 올라 선 기쁨도 잠시.고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세계 바둑 1인자' 이창호 9단은 천근의 짐을 떠안은 듯 마음이 무겁다. 정상을 지키는 것이 오르는 것보다 몇 갑절은 더 어렵다고 했던가. 나이 어린 후배들의 가공할 만한 패기와 뚝심, 살기등등한 전의(戰意)가 벌써부터 피부에 와 닿는 것만 같다.

10년마다 한번씩 바둑계의 판도가 뒤바뀐다는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우선 신경에 거슬린다. 해방 후 한국 현대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당대 1인자'들을 일렬로 세운다면 1960년대 조남철→70년대 김인→80년대 조훈현→90년대 이창호.

2000년의 문턱을 갓 넘어선 지금이야말로 이론상 새로운 1인자가 나타날 시점이다.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마다 백가쟁명의 혼란기가 도래했다는 점도 '10년 주기설'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해 한국 바둑계는 정상 4인방의 카르텔이 허무하게 깨지며 맹주 없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지 않았던가.

'이창호 왕국'만큼은 과연 역사의 수레바퀴를 비켜갈 수 있을까. 첫번째 시험무대는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이다. 26일부터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서 열리는 결승전(5번기)의 상대는 지난 해 신예 쿠데타의 선봉장 이세돌 3단. '앙샹 레짐(구체제)'과 신진 반란세력의 대표 주자끼리 충돌한다는 점에서 바둑사적으로도 상징성이 매우 큰 대결이다. 상금 규모는 잉씨배의 절반(2억 5,000만 원)에 불과(?)하지만 수성을 해야 하는 이창호의 입장에선 잉씨배보다도 오히려 더 전력을 기울인 사투가 불가피하다.

예상 승률은 '돌부처'(이창호의 별명)의 6대 4 우세. 이 3단과는 역대 전적에서 2승 1패로 앞서고 있는데다 10년 동안 쌓아 온 화려한 관록에다 국제대회 결승전 불패신화(지금까지 13회 출전해 12회 우승)로 볼 때 외형상 다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다. 내심 꺼림칙하게 여겼던 중국의 '이창호 저격수'저우허양(周鶴洋) 8단이 준결승서 탈락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도 덜하다.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불패소년' 이세돌의 상승세가 생각처럼 쉽게 꺾일 것 같지는 않다.

일부에서는 이창호가 1990년 제29기 최고위전을 필두로 스승 조훈현의 아성을 조금씩 허물어뜨리기 시작하던 때를 회고하며 '쫓기는 자'보다는 '쫓는 자'의 우세를 점치기도 한다. 실리 위주의 수비형(이창호)과 확연히 대비되는 이세돌의 전투형 기풍도 승부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요인. '리틀 조훈현'으로 불릴 만큼 빠른 공격과 변화무쌍한 행마로 소문난 이 3단은 이번 대회에서 중국의 간판스타 창하오(常昊) 9단과 '철녀'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을 연파한 데 이어 준결승전에선 이 9단과 기풍이 유사한 저우허양마저 가볍게 제압했다. 이창호에게 유난히 강세를 보여 온 루이보다 공격력이 한 수 위이고, 이창호를 능가할 정도로 빈틈없는 저우허양의 수비바둑에 대해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고 둘의 대결을 '창(이세돌)과 방패(이창호)의 싸움'으로 단순화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공교롭게도 둘은 최근 들어 각자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서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자기 스타일'을 수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원 이성구 홍보과장은 "다소 성급하고 기복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세돌은 최근 들어 침착하면서도 신중한 이창호류의 수비바둑으로 변신을 꾀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고, 이창호는 전에는 황소걸음과 같은 안전운행을 했으나 요사이 미완성 정석과 신수를 실험적으로 구사하며 새로운 공격바둑으로 변신을 시도 중"이라고 평했다. 과연 누구의 실험이 성공할 것인지, 새로 다가올 10년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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