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만한 투수들은 죄다 부상병동에 있고 선발진 짜기도 어려워"(최동원)"문제네요"(선동렬), "살이 다 빠진다니까"(최동원)
한국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던 최고투수들이 19일(한국시간) 한화 스프링캠프인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구장에서 반가운 악수를 나눴다.
선동렬(38) 한국야구위원회 홍보위원이 투수 인스트럭터로 10일간 한화선수 지도를 위해 호주에서 SK전지훈련을 도운 뒤 곧바로 최동원(43)이 투수코치로 있는 한화 스프링캠프로 날아왔다.
1980년대 당대 최고의 투수들이 지도자로 첫 상봉한 것. 올 시즌 신출내기 코치로 선수들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최동원으로서는 지난날의 라이벌이 다시 없는 원군이고 역시 지도자로 새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선동렬에게 야인생활을 접고 코치로 변신한 최동원과의 만남은 지도자 수업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최동원과 선동렬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 싶을 만큼 그들이 남긴 족적은 깊고 크다. 87년 두 투수간의 14이닝 완투경기는 비록 2-2 무승부로 끝났지만 프로야구사에서 두번 있기 힘든 라이벌전이었다.
최고투수 자리를 놓고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싸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길은 달랐다. 선동렬은 96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 나고야의 수호신으로 한국투수의 위상을 높이면서 '국보급투수'로 화려하게 은퇴한 반면 84년 한국시리즈 4승으로 롯데 우승을 이끈 최동원은 88년 선수단체결성 주도로 롯데에서 삼성으로 옮겨갔고 결국 2년뒤 부진끝에 초라하게 은퇴, 야구판을 떠났다. '독불장군'의 이미지 때문에 어느 구단도 지도자로 받아주지 않은 야구계의 '왕따'였다. 뜻밖에도 이광환 한화감독의 부름으로 그는 10년 야인생활을 털고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최고투수로서 자존심경쟁이 치열했던 두 사람이지만 도움을 주고받을 처지. 최동원은 "모자란 점이 많으니까 열심히 도와달라"고 했고 선동렬은 "정신적, 심리적인 면에 대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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