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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연장자 배려하며 응급차량은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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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연장자 배려하며 응급차량은 무시

입력
2001.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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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시내로 갈 일이 있어서 시내버스를 탔다. 서울에서도 혼잡하기로 이름난 이수교 교차로에 버스가 이르렀다. 직진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뒤에서 구급차 한 대가 큰 사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다가왔다.구급차는 대구에 있는 병원 소속이었다.

그런데 구급차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양보하는 차량이 없는 데다가 내가 타고 있던 버스를 포함해 구급차 앞에 있는 차들도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교차로는 혼잡했지만 구급차 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은 있었다. 결국 구급차는 기다렸다가 신호가 바뀐 뒤에나 발차할 수 있었다. 혹시 이 때문에 그 구급차로 수송된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는지 아직도 걱정이 된다.

그 전에도 서울 중심지에서 비슷한 광경을 봤다. 어딘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는지 소방차 몇 대가 골목길을 통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골목길은 승용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밖에 안되는 데다 불법주차 차량까지 있었다. 또 소방차가 골목길에 들어갔는데 반대방향에서 승용차가 와서 통과하지 못했다.

'빨리 빨리'라는 말은 외국인이 한국인의 특징을 표현할 때 흔히 사용된다. '빨리 빨리'정신이 한국의 급성장을 가능케 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번 구급차나 소방차 이야기는 이 '빨리 빨리'정신의 부작용인지도 모른다. 빨리빨리를 너무 강조해 공공 장소에서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진 것은 아닐까.

그런데 한국에 와서 항상 감탄하는 것은 연장자에 대한 배려이다. 요즘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고령자들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자마자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울 때도 연장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런 유교의 좋은 습관이 남아 있는 한국사회에서 왜 교통질서에는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가.

실은 일본에도 한국처럼 대중질서 문제가 있다. 오사카(大阪)의 대중질서는 좋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법주차, 전철을 빨리 타려는 습관도 만연해있다.

오오타니 코이치(大谷晃一) 테즈카야마학원대 학장은 저서 '오사카학(大阪學)'에서 그 원인을 상인문화에서 찾고 있다. 경쟁이 심한 상인사회에서는 규칙보다 실제가 우선한다는 뜻이다.

또 오오타니 교수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오사카의 대중질서를 고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세월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해 이 같이 대답했다.

"오사카의 상인문화가 시작된 지 300년 되었으니 그만큼 걸릴 것"이라고. 그렇다면 한국에는 희망이 있는 셈이다.

상인문화 전통이 상대적으로 짧은 한국은 그만큼 빨리 대중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카노 쇼이치ㆍ서울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전공ㆍ일본 NHK 제1라디오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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