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올림픽'잉씨배 석권은 이창호(26 ) 9단에겐 명실공히 '세계 바둑 1인자'임을 알리는 축포나 다름없다. 잉씨배는 현존하는 국제 기전 가운데 이 9단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정상'이었기 때문이다.마침내 그 산에 오름으로써 그는 천하를 얻게 됐다.
잉씨배와는 유난히 인연이 없었다. 국내 바둑계를 평정하며 승승장구하던 1993년 제2회 대회 때는 중국의 여류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에게 덜미를 잡혀 초반 탈락했고, 절치부심 끝에 재도전한 3회 대회(1997년) 때는 8강전에서 라이벌 유창혁에게 패해 분루를 삼켰다.
하지만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절호의 기회를 그는 놓치지 않았다.
결승 상대가 '공이증(恐李症)'에 시달려 온 중국의 창하오(常昊) 9단인데다, 지금까지 세계대회 결승전에 12회 출전해 11회나 우승한 화려한 경력, 단판 승부가 아닌 번기(番棋) 승부에 유난히 강하다는 점도 우승에 톡톡히 한 몫을 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된 16일 대국은 이 9단의 '신산(神算)'다운 저력이 돋보인 한 판이었다. 이 9단은 초반 좌하귀 전투에서 뜻밖의 완착으로 창하오 9단에게 두터운 세력을 내주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검토실에서는 이미 중반 무렵부터 이 9단의 패색이 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9단은 우상귀 접전에서 신기하게도 집 차이를 조금씩 줄여나가더니 마지막 단계에서 특유의 끝내기 솜씨를 발휘, 예상을 깨고 미세한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2집반에 해당하는 3점승. 이로써 이 9단은 중국의 간판 스타 창하오 9단에게 역대 전적 14승 2패로 압도적 우위를 지켰으며 5억원에 가까운 거액의 우승상금도 쥐게 됐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지난해 6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 상금 랭킹 3위로 내려앉는 등 슬럼프 양상을 보였지만 이번 우승을 계기로 부진을 씻고 다시 한번 제2의 전성기를 달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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