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는 언제 어디서 문제가 터질 지 모르는 '지뢰밭'이다. 집 없는 설움을 털어낸 것도 잠시, 건설회사가 부도라도 나면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보증금 한푼도 건지지 못한채 다시 길가에 나앉아야 한다.한국부동산신탁을 포함, 최근 20여개 건설사의 잇단 부도ㆍ파산으로 보증금을 날리게 된 전국 2만여세대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개미처럼 살아가는 서민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죽어가고 있다"(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장 윤범진)며 절규하고 있다.
▦ 파산법 때문에 파산
지난해 12월28일 동보건설 파산으로 보증금 1,5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 백모(33ㆍ강원 춘천시)씨는 "농협빚으로 돈을 마련해주신 소작농 아버지께서 소식을 듣고는 그만 쓰러지셨다"며 "서민들만 손해보도록 한 이런 제도가 도대체 어느 나라에 있느냐"고 울부짖었다.
부채 3,623억원인 동보건설의 자산은 파산당시 2,876억원. 이 때문에 동보임대아파트에 사는 전국 8곳 4,900여가구가 506억원의 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게 됐다. 한국부동산신탁 부도의 여파로 경기 광주 곤지암임대아파트(1,152세대), 경기 일산 탄현의 큰마을아파트(2,588세대) 주민들 역시 각 203억원, 400억원의 보증금을 날린 채 망연자실해 있다.
이밖에 입주도 못해보고 계약금과 분양잔금만 날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임대아파트 건설시 대한주택보증의 분양보증을 제대로 받지않기 때문이다.
▦ 문제점
임대아파트 보증금 피해가 속출하는 것은 건설회사 부도ㆍ파산 시 세입자에 대한 보호규정이 전혀 없는 '파산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
"전세제도가 없는 일본의 파산법을 차용"(민주노동당 송태경 정책위원)한데다, "파산법 제정 시 정부가 임차인보호문제를 예상 못한"(중앙대 전병서 교수) 탓에, "임대보증금이 임금, 세금, 공사대금, 근저당 설정자보다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동보건설 파산관재인 정태상 변호사) 실정이다. 결국 지금의 파산법은 '서민파산법'인 셈이다.
▦ 대책
파산법 전문가인 중앙대 전교수는 "정부가 임대아파트 입주자의 보증금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파산법을 개정, 이들에게 경매 시 우선권을 갖는 '별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도 "피해 입주자들에게는 정부가 싼 가격으로 분양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주되, 이른 시일 내에 파산법을 개정해 더 이상의 피해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위원회 이선근 집행위원장은 "분양보증을 강행규정으로 하고, 주공이나 토공 같은 기관에서 임대아파트 건설을 책임지도록 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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