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월16일 시인 윤동주가 일본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향년 29세.북간도 출신으로 교토(京都)의 도지샤(同志社) 대학 영문과에 다니던 윤동주는 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 에 체포돼, 44년 6월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었다.
윤동주라는 이름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순수함, 수줍음, 민족애 같은 것이다.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그의 애달픈 죽음을 빼놓으면, 많은 한국인들이 외우고 있을 그의 '서시(序詩)'일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가 이 시를 쓴 것은 1941년 11월20일이다. 그 뒤 3년 남짓 동안 그에게 주어진 길은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쿄(東京)와 교토에 유학을 하고, 일제의 감옥에서 죽는 것이었다.
이 시를 쓸 때 그가 자신의 때이른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을 예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아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살려고 애는 썼을 것이다.
너무 일찍 죽어서 그는 큰 시인이 될 시간이 없었다. 또 그의 여리고 내향적인 시들이 보여주듯, 그는 오래 살았더라도 헌걸찬 민족해방 전사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시대의 대다수 교양인들처럼 그도 창씨개명을 했다. 그러나 윤동주는 일제 감옥에서의 상징적 죽음으로 한국인 모두의 마음에 새겨진 상징적 민족 시인이 되었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길이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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