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겠다.'닷컴 위기로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던 벤처들의 해외진출 발걸음이 다시 분주해지고 있다. 이들은 그간 홍보나 펀딩을 위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이제는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 적극적 자세로 임하고 있다. 진출 지역도 미국 중심에서 일본, 유럽, 아시아권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
정보통신(IT) 산업의 중심지인 미국 시장을 뚫었다는 것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통할만큼 제품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주요 업체마다 전략적으로 현지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전자상거래 솔루션 업체인 이네트가 자본금 5만 달러를 출자해 현지 법인 커머스21을 설립했고 올해안에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있다. 경쟁업체인 파이언소프트는 다음달 시애틀과 LA에서 현지 법인 개소식을 갖는다.
지난해 미국, 일본, 독일 등 7개국업체와 글로벌 ISP(인터넷서비스공급)체제를 구축한 유니텔은 최근 세계적 장비업체 시스코와 제휴를 맺고 현지 유무선 솔루션 시장 개척에 들어갔다.
게임 관련업체로는 배틀탑이 보스톤에 현지 법인을 설립, 영문 사이트(us.battletop.com) 오픈과 동시에 오프라인 게임리그 사업에 나섰고 비테크놀러지가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설립해 네트워크 플랫폼 판매에 들어간다.
휴대폰 단말기 제조업체인 세원텔레콤은 LA에 법인을 설립해 중남미 시장 공략을 추진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시장 진출의 결과가 가시화하는 올해 중반부터는 국내 시장의 인터넷 벤처에 대한 시각도 호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지리적으로 가깝고 미국에 비해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 치열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자상거래, 게임, 인큐베이션 분야의 진출이 활발하다.
전자상거래 솔루션 업체 창신소프트는 현지의 ㈜가라와 합작으로 업계 최초로 인터넷 무역회사 가라코리아를 설립, 양국 무역업체들의 전자상거래 업무 대행에 나섰다.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업체인 엔토크는 일본 다이이치통신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인터넷 운영 노하우를 로열티를 받고 제공키로 했다. 게임업체 넥슨은 현지법인 설립을 마치고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시범 서비스 중이며 인큐베이션 업체 파파빈닷컴이 자회사를 설립해 인큐베이팅 사업을 하고 있다.
이밖에 이네트, 배틀탑이 일본 법인을 두고 업무에 들어간 상태이며 경매업체 옥션이 일본 히카리 통신과의 제휴를 마치고 일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아시아권
우리와 같은 동양권에 속하는 아시아 지역은 정서를 공유하는 부분이 많고 인터넷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한때 잠재시장이 거대하다는 점 때문에 진출붐이 일었던 중국은 인프라 미비 등으로 성과가 나지 않아 상당수 업체가 철수한 반면, 대만, 홍콩이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대만에 온라인 게임 리니지 돌풍을 일으켜 아시아권 진출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엔씨소프트측은 지난 한해동안 리니지로 대만에서 11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홍콩 법인을 설립해 서비스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디지토와 미래랩도 지난달 홍콩에서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를 전개할 현지법인 '웨이닷컴'을 세웠다.
파이언소프트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중국 시장에 진출키로 하고 중국 의료관련 전자상거래 업체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VoIP 솔루션업체인 인츠는 최근 말레이시아 인터넷업체인 기가웹에 200만달러 규모의 솔루션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유럽권
인프라 구축이 잘 돼있고 유료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유럽인들은 돈을 내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 아직은 실적을 따질만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실정이다.
게임업체 타프시스템은 낚시게임 '대물 낚시광'을 유럽 시장에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채팅업체 하늘사랑은 폴란드 소프콘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자본금 5억원 규모의 합작법인 설립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스카이러브닷컴(www.skylove.com) 도메인을 확보하고 폴란드어 채팅 프로그램 구축을 마친 상태.
네띠앙, 심마니, 게임업체 CRS는 독일에 진출하기위해 합작법인 유로코를 설립, 컨텐츠 제공과 검색 서비스를 준비중이다. 배틀탑은 영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온라인 게임 서비스에 나설 예정이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해외진출 성공 조건
'외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외국인 입장에서 생각하라.'
해외에 진출하려는 국내 벤처들에게 전문가들이 던지는 충고다.
이코퍼레이션 저팬의 염종순 대표는 해당국가 문화에 맞는 사업 계획서 작성, 명확한 사업 비전 제시를 꼽았다.
염대표는 "일본 기업인들은 비즈니스 모델 인증서 같은 눈에 보이는 객관적 자료를 좋아한다"면서 "평소 정부나 지명도 있는 기관이 수여하는 서류를 확보했다가 사업계획서에 첨부해 제출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돈이 되지 않으면 관심을 끌기 어려우므로 상품 포지셔닝과 미래 전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덧붙였다.
선진국 업체들은 계약을 중시하므로 문제 소지가 있는 조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 컨설팅 전문 IR&IR의 이지형 컨설턴트는 "미국인과 협상하다 보면 협상 시에는 유연하게 이야기하다가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계약서대로 한다"면서 "문제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계약서 체결 후라도 충분히 협의해 추가로 명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정보망이 부족한 벤처 입장에서 외국 지사를 가진 대기업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미국, 호주 현지법인 설립과 외자 유치에 성공한 VoIP업체 애니유저넷의 송용호 대표는 "해외 지사망이 갖춰진 대기업과 업무 제휴를 맺고 현지 시장을 파악했더니 비용이 절감되고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서 "일단 현지 업체와 접촉이 됐다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교포인력 및 유학생과의 연결 통로를 확보하고 지사보다는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국내 IT산업 높게 평가…작년 22억弗 3.2배 급증
국내 벤처 업계에 해외 자본이 들어오고 있다. 외자 유치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벤처들이 국내 투자를 받기 어려운 탓에 외자 유치 노력을 전개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해외 투자가들이 국내 정보통신(IT) 산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들어 외자 유치에 성공한 IT 벤처는 줄잡아 5,6곳. VoIP(음성데이터통합)업체 애니유저넷이 싱가포르 캐피털펀드사인 스탬포드 캐피탈그룹으로부터 300만 달러를, 반도체장비업체 케이씨텍은 미국 장비업체 ATMI사에 자사주 매각을 통해 2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이동전화업체 세원텔레콤은 지분매각을 통해 화교자본인 체리사로부터 5,000만 달러를 받았고 무선인터넷 솔루션 업체 유엔젤은 JP모건의 기술투자펀드와 600만 달러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닷컴 위기론이 가시지 않았던 지난해 말에도 외자유치는 그치지 않았다. B2B 포털 운영업체인 이웹21이 말레이지아 무역회사 컴케마SDN으로부터 1,200만 달러를 받았고 이동통신 업체 기가텔레콤은 일본 최대 벤처캐피털인 국제파이넌스로부터 250만 달러를 유치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IT 벤처기업의 외자유치 규모는 22억 8,700만 달러로 1999년의 7억 달러보다 3.2배 증가했다. 특히 순수 인터넷 벤처기업은 1~9월까지 모두 6억1,600만 달러를 해외에서 유치해 1999년 같은 기간의 1억 4,600만 달러보다 4.2배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 등 대규모 외자유치를 추진중인 업체들이 주가상승 등으로 난항을 겪고있고 주가관리를 위한 이벤트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신재정 사무국장은 "해외 투자가는 국내 벤처의 기술력을 보고 자본을 대는 것인 만큼 기술개발로 인정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