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행정이 좀 더 과감히 개혁되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많다.과도한 규제로 민간부문의 발목을 잡는 일도 여전하고,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가리지 못한 채 아까운 세금을 축내고 있는 것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 역시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관행과 청탁문화 속에 관료체제는 여전히 거대한 '인재의 무덤'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개혁을 어떻게 추진하느냐 하는 것이다. 잘못된 개혁은 행정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잘못된 규제완화는 강한 자를 더욱 강하게 하고 약한 자를 더욱 약하게 함으로써 분배정의를 훼손시킬 수 있고, 시장경쟁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 있어서의 민간위탁은 더 큰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
사람과 조직을 줄이는 다운사이징 역시 잘못 추진되면 공무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면서 복지부동과 인사청탁과 같은 병폐를 심화할 수 있다.
지나친 걱정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행정개혁 프로그램들을 보면 기대보다 불안감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상징성이나 정치논리가 앞서 우리의 형편이나 관행에 잘 맞지 않는 제도가 급하게 도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의 경우만 해도 3급 이상 직급에 특정 고등학교 출신의 비율을 30%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걱정이 된다.
힘있는 자리 하나가 그렇지 못한 자리 몇 개를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마당에 비율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개혁의 기본 틀이 되어야 할 실적주의 원칙만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번 달에 지급되는 상여금 성과급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성과급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잘 개발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표는 조직구성원들간에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어야 한다. 조직구성원들이 평가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성과급 제도는 오히려 조직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구성원간의 반목과 갈등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이러한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개별적 직무를 평가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관행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으며, 평가척도를 만들기 위한 조직의 '핵심가치' 등에 대한 합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교사들의 경우 제대로 된 평가척도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성과급 지급을 강행한다고 하니 오히려 한푼도 받지 않겠노라 반발하는 것이다.
정부도 적지 않게 고민을 한 것 같다. 평가가 상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질 것을 우려해 상관 부하 동료 모두가 평가하는 다면적 평가를 권장하고 있고, 지급대상자의 폭은 되도록 넓히고 지급률 격차는 되도록 줄이는 방안을 내어놓고 있다. 그러나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이 또한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앞서도 이야기하였지만 행정개혁은 반드시 이루어내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졸속은 피해야 한다.
한 두 건의 용역결과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내리꽂는 독선도 피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와 관행에 상충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상징성과 정치적 목적만을 앞세워 조급한 행동을 하게 되면 개혁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김병준ㆍ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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