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이 국경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그리고 웃음은 언어의 장벽과 이데올로기도 초월한다.12일(현지시간) 제51회 베를린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베를리날레 팔레스트에서 오후 1시와 7시 30분 두 차례 개최된 '공동경비구역 JSA'의 기자시사회와 일반 시사회는 극장(1,600석 규모)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로 대성황을 이뤘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영화가 배표 4시간만에 매진된 것은 제작사(명필름)와 배급사(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한국에서와 같았다. "우리 북조선에서도 이런 맛있는 초코파이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는 그래도 먹어야지"하며 송강호가 초코파이를 한입에 먹는 장면, 병사들이 총알로 공기놀이를 하거나 말 이어가기 게임을 하는 장면,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여자가수는 없네?"하고 묻는 장면 등에서 여지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시사장에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기자회견장은 마치 남북한의 통일 방식을 논의하는 거대담론의 경연장 같았다.
독일, 미국 등의 기자들은 "이런 영화가 만들어져 상영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분위기가 자유로운가" "남북한이 통일이 된다면 어떤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에서는 독일식의 통일 방식을 모델로 생각한다고 들었는데" "북한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
상영은 됐는가" "실제 사건을 염두에 둔 것이냐, 아니면 누구를 만나서 이런 영화들을 기획했는가" 등의 질문이 쉬지않고 쏟아졌다.
박찬욱 감독은 "기획 당시만 해도 영화가 제대로 상영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남북한의 정치상황이 급변하면서 오히려 결말이 보수적으로 비쳐질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명필름 공동대표는 "이 영화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아 북한에 전달되었다.
아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입장에서 만든 영화이므로 기분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통일 논의에 대한 질문이 많이 쏟아지다 보니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질문은 의외로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무거운 주제를 코믹하게 다룬 부분에 대해서는 점수가 후한 편이었다.
아시아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인터넷 영화 전문 '아시안 필름 존'의 샌드라 린츠 편집장은 "판문점이라는 무거운 공간적 배경을 코믹하게 처리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문제로 만든 탁월한 영화"라고 논평했다.
또 "인간이 알아야 하는 진실이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라는 철학적인 호평도 나왔다.
■아시아 붐 타고 JSA 상 탈까
7일 제51회 베를린영화제의 개막식에서 빌 메카닉 심사위원장은 "아시아 영화가 5편이나 초청됐고, 특히 우리 영화제의 이념에 맞는 영화 한 편이 출품돼 매우 고무적"이라고 언급했다.
중국과 일본 영화가 개인적 취향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이 말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염두에 둔 것임이 분명하다.
독일 역시 분단국가였고, 베를린영화제가 전통적으로 정치적 갈등이나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 영화에 관심을 나타내온 점에서 분단을 소재로 한 '공동경비구역.'에 우호적일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의 마케팅장'이란 비난을 들어왔던 집행부가 사실상 후선으로 물러남에 따라 정치색이 강한 아시아 영화에 프리미엄을 줄 것이란 기대감도 팽배해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 3대 영화제 중 베를린이 한국영화에 가장 우호적이었다.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은곰상을 수상한 이래 한국 영화는 그간 6편의 본선 경쟁작을 배출했다.
1962년 신상옥감독의 '이 생명 다하도록'이 아동특별연기상(배우 전영선)을 수상했고, 1985년 '땡볕'(하명중감독), 1986년 '길소뜸'(임권택감독)이 진출했다.
1994년 '화엄경'(장선우감독, 알프레드 바우어상 수상), 1995년 '태백산맥'(임권택감독), 1996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박광수감독)이 3년 연속 진출하면서 한국영화 부흥기의 시동을 걸었다.
1957년 이병기 감독의 '시집가는 날'로 첫 노크를 한 베를린 영화제에서 8번째 본선에 오른 '공동경비구역.'이 수상할지는 미지수.
그러나 "내년부터는 아시아 영화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현지 언론들의 분석을 미루어 보면 전망이 어둡지 만은 않다.
다만 마이클 더글러스, 캐서린 제타존스 등 화려한 배역에 할리우드의 기린아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한 '트래픽', '개같은 내 인생'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초콜렛', '시네마 천국'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밀레나' , 흑인 이념주의 감독 스파이크 리의 '뱀부즐드' 등 쟁쟁한 스타 감독들의 작품에 쏠리는 시선이 너무나 뜨거운 것도 사실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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