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5월 경주 동국대 한의대 시간강사 시절. 우연히 들른 문화서림에서 만공(滿空) 법어집 '보려는 자가 누구냐'가 눈에 확 들어온 순간부터 내 인생은 180도 회전했다.그 길로 책을 출간한 수덕사로 간 기세는 가히 돈키호테의 풍차 돌진에 비유될 수 있다. 경허(鏡虛), 만공의 법맥으로 알려진 수덕사 방장 혜암(惠庵)의 문중에서 발간한 책 속의 선문답을 하러 돌진했으니까 말이다.
99세 되신 혜암 큰스님께 삼배를 드리고 나자 선문답이 칼같이 날아 왔다. "옛날 운문(雲門)선사께서 '한 생각만 일으켜도 죄가 된다'하시자 한 학인이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하고 물어왔다.
이에 '죄가 수미산과 같이 크다'고 운문선사가 말씀하셨으니 어째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하였는데 죄가 수미산과 같은지 즉시 일러 보라"
이에 당당하게 필자는 "큰스님 아까 올라올 때 버스가 매우 복잡했습니다"고 대답해놓고 보니 스스로도 아주 대견스러워 목에 힘을 주고 노선사님의 눈치를 살폈다.
두 번째 질문이 떨어졌다. "조사(祖師)의 뜻과 부처의 뜻이 같은가, 다른가의 질문에 옛날 어떤 선사는 '계한상수(鷄寒上樹) 압한하수(鴨寒下水) 즉 닭은 추우면 나무 위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는데 그 이유를 일러 보시게."
0.1초의 틈도 두지 않고 필자는 "큰스님 여기 검정 돌이 있는데 검정색깔과 돌이 같습니까, 다릅니까"라고 응수하면서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순간 벼락같은 소리로 필자의 귀청을 때리는 노선사의 고함은 "틀렸어"였다.
눈을 들어 보니 고개는 앉아 계신 의자 뒤쪽으로 완전히 외면하신 채 두 손으로 필자 쪽의 허공을 저으시면서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시는 것 아닌가.
순간 필자는 얼떨결에 문 밖으로 내동댕이쳐져 어느덧 대천 앞 바다의 포장마차에 가 있었다.
소주와 회를 왕창 들어도 잠이 안오던 그날 밤을 새우고 새벽 첫차를 타고 다시 수덕사 찾는 순간은 어제 선문답에 대한 다른 답을 지니고 있었다.
마침 알아보시는 비구니 두 시자 스님께서 "큰스님 말씀대로 일등 선객(禪客)이 오셨구먼"하면서 맞아주시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날 필자의 준비된 답은 물론 엉터리였고 그로부터 수없이 틀렸다는 말을 들어야 했으며 그 화두(話頭) 탁마의 시절은 85년 5월 사부님의 입적시까지 계속됐다. 틀려도 좋으니 다시 한번 재생시키고 싶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김홍경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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