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45ㆍ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최근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고 싶다는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반포대교로 향하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 했다.서울 서초구 신반포지역에서 반포대교 보행로로 가려면 4차로의 강변도로를 건너야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횡단도로가 없었던 것.
이씨가족들은 '일단 다리 보행로로 올라서면 괜찮겠지'하는 생각에 위험을 무릅쓰고 무단 횡단을 한 후 다리 보행로에 올라섰지만 또 숨이 턱 막혔다. 검문초소와 바리케이드가 보행로를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 가족은 결국 장애물을 피해 차들이 쏜살같이 달리는 다리 위 차도로 내려와 걷다가 다시 보행로로 올라서며 '목숨을 건' 곡예를 거듭해야 했다.
한강다리들이 시민들의 보행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있다. 12일 본보 취재진의 현장확인 결과 인도가 있는 한강다리 16곳 가운데 8곳이 다리 양쪽끝에 연결 횡단보도 등이 없거나 검문초소 등이 인도를 점령하고 있어 사실상 보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 시드니의 하버브리지 등 선진국의 상당수 다리들이 달리기를 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한강다리들은 살벌한 자동차 전용교량을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보행권을 무시하고 있는 다리는 반포대교 뿐이 아니다. 성산대교는 다리 위 진입 인도에 대형 교통통제 안내판이 길을 막아 통행하려면 차도로 내려와 걸어야 한다.
천호대교는 북단에서 남단으로 내려올 경우 우측 인도 끝에 이르면 갑자기 보도가 끊기고 바로 강변도로에서 진입하는 차량들이 튀어 나와 목숨을 걸고 무단횡단을 해야하는 실정이다. 올림픽대교도 검문초소가 좁은 인도 위에 설치돼 있어 보행자의 통행을 막고 있다.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41)대표는 "서울시의 다리들이 시민들의 보행권을 무시한 지는 이미 오래"라며 "'걷고 싶은 도시건설'이라는 서울시의 정책에 맞게 한강다리의 보행공간도 되찾아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건설안전관리본부 관계자는 "건설교통부 '도로의 구조 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1일 보행자가 150인 이상일 경우 보도를 설치해야 하지만 1일 보행자가 150명에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라며 "보행권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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