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면 살수록 어찌 이 작은 땅덩어리에 구석구석 이토록 볼 것이 많은가 하고 감탄하게 된다.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작은 섬들과 산골마을, 해안가의 동네까지 알고 싶은 나에게 한국은 늘 신비로운 여행탐험지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나를 비롯한 외국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심각한 공해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무신경이다.
시내에는 아주 낡은 버스나 트럭들이 버젓이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질주를 하지만 누구하나 대기를 오염시킨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경찰관들 조차 과속단속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대기오염차량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태도이다.
프랑스에서는 대기오염차량은 즉각 경찰의 단속에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운전자나 행인들로부터 눈총을 받아 운전을 할 수가 없다.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공기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서울생활 3년째인 내게 '대기오염'만큼이나 심각하게 느껴지는 문제는 바로 '소음공해'다.
나는 한국에 와서 거의 한번도 '고요한 아침'을 맞아보지 못했다. 모처럼 늦잠을 즐기고 싶은 일요일 아침까지도 7시면 어김없이 "자! 싱싱한 야채가 왔어요, 마늘이요 마늘 배추가 왔어요"라고 외치는 찢어지는 스피커 소리에 잠을 깨야 한다.
운이 없는 날에는 한꺼번에 두 세대의 스피커소리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골목쪽으로 창이 난 3층 빌라의 내방에서 듣는 스피커 소리는 아무리 베개와 이불로 귀를 막아봐도 소용이 없다.
더 의아한 것은 누구하나 문제를 제기하고 따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많은 한국사람들은 점잖고 말수가 적다. 이렇게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소음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한지 알 수가 없다.
아침마다 시달리는 행상의 스피커 소리는 물론이고 한밤중의 고성방가에도 길들여져 있다. 버스를 타면 운전기사의 취향대로 커다랗게 틀어놓은 음악소리, 지하철에서도 버젓이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이미 길들여져 있다.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무어라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참고 또 참는다.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찾아간 명승 유적지에도 소음은 줄기차게 쫓아온다.
휴게소마다 볼륨을 한껏 높힌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오고, 유적지 입구나 식당 등에서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노래하고 춤춘다.
법적인 제재도 필요하겠지만, 어릴 적 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연극공연장이나 전철 안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심지어 노래하고 박수치는 어린이들을 한국의 어른들은 나무라기는 커녕 예쁘다고, 잘한다고 칭찬하기 일쑤다. 공공장소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다.
타인을 방해하는 소리는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일 지라도 공해라는 사실을 왜 가르치지 않는가.
화브리스 고띠에
연세대 어학당 한국어 과정, 파리10대학 한국지리학 박사과정, 프랑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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