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앞바다에서 10일 오전 일본의 수산고교 실습선과 미 해군 핵 잠수함이 충돌, 9명이 실종되고 12명이 부상했다.10일 오후 1시45분께 하와이 오아후섬 남쪽 18km 해역에서 일본 우와지마(宇和島) 수산고교의 499톤급 조업실습선 에히메마루(愛媛丸)가 6,900톤급 핵 잠수함 그린빌호(142명 승선)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에히메마루에 타고 있던 고교 실습생과 선원 등 35명중 26명은 구조됐으나 9명이 실종됐으나 모두 숨진 것으로 보인다.
실습선의 오니시 히사오(大西尙生) 선장은 "잠수함이 갑자기 떠올라 실습선을 들이받았다"며 "두 차례 엄청난 충격음이 있었고 그 뒤 실습선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초계활동 중이던 그린빌호는 부상하면서 선미로 실습선을 들이받았으며 실습선은 기관실이 파손되고 물이 들어와 곧 가라앉기 시작했다.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는 이와 관련, 그린빌호 함장 스커트 워들 중령을 직위 해제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사고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경위를 파악토록 지시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외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부시 대통령의 유감과 애도의 뜻을 전달했다.
미 핵잠수함과 일본 선박간의 충돌사고는 이번이 두 번째로 1981년 일본 화물선과 핵잠수함 조지 워싱턴호가 가고시마(鹿兒島)현 근해에서 충돌, 2명이 숨진 바 있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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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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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핵잠 긴급부상 왜했나"
에히메(愛媛)현립 우와지마(宇和島) 수산고교의 실습선 에히메마루(499톤)가 미 핵잠수함 그린빌(6,900톤)호에 들이받혀 침몰한 사고는 최첨단 장비도 사람의 실수에는 어쩔 수 없음을 새삼 확인시켰다.
미 해군이 사고 과정을 조사하고 있고 미 행정부도 사고 원인을 충분히 규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군사기밀 덩어리'인 핵잠수함의 사고라는 점에서 그대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침몰한 에히메마루에 탔던 생존자들의 증언과 그린빌에 뚜렷이 남은 충돌 흔적 등을 통해 대체적인 사고 경위는 추정할 수 있다.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저에서 잠수함이 부상하는 절차는 고도의 훈련과 기술, 전문성을 요구하며 최첨단 핵잠수함도 예외가 아니다. 잠수함은 부상하기에 앞서 수중음파탐지기(소나)를 통해 부상할 해상의 선박이 있는지를 우선 확인한다.
부상 목표 해상에 선박이 없음을 확인한 후 비로소 부상 준비에 들어간다. 부상하기 시작한 잠수함은 중간에서 일단 정지, 잠망경을 올리고 주위를 수km 앞까지 관측한다. 레이더탐사를 병행하는 것도 물론이다.
위험물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약 3분간에 걸쳐 천천히 부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다. 잠수함 성능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미군의 핵잠수함도 같은 절차를 거친다고 일본 해상자위대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에히메마루의 선장이나 승선했던 실습생들은 잠수함이 갑자기 떠올랐다고 증언했다. 에히메마루는 2~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침몰했다. 잠수함 좌현에는 커다란 충돌 흔적이 남았고 꼬리부분에도 충돌 흔적이 뚜렷했다. 두 차례의 충돌이 하나로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린빌호는 에히메마루를 두 번이나 포착하지 못했다. 우선 수중에서 음파탐지기를 통한 확인에 실패했다. 어로 실습중이던 에히메마루가 엔진을 꺼 놓고 있어 음파탐지기에 포착되지 않았거나, 그린빌호가 위치 노출을 꺼려 음파탐지기를 작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2차원의 평면으로 주위를 파악하는 해상 선박과 달리 3차원으로 주위를 확인해야 하는 난점상 에히메마루를 포착하고도 이동속도와 방향을 오산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잠망경을 통한 실제 관측을 행했는지가 불투명하며 설사 잠망경 관측을 했더라도 해역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확인에 실패했을 가능성도 있다. 부상 직전 레이더를 작동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악조건을 감안하더라도 미 해군의 주력인 로스엔젤레스급 핵잠수함인 그린빌호가 장비면에서의 탐지 능력이 부족해 에히메마루 포착에 실패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신 잠수함 승무원들이 어떤 이유에서 통상의 부상 절차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미국은 물론 각국 해군은 잠수함 관련 사항을 기밀중의 기밀로 취급해 왔다.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 사고도 아직 정확한 원인이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해 싱가포르 앞바다에서 열린 다국적 잠수함 구난훈련에는 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구형 잠수함만 파견할 정도로 정보 노출을 꺼려 왔다. 따라서 그린빌호의 성능과 운용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정확한 사고 경위는 영원히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 그린빌 核잠수함은
USS 그린빌은 다목적 군사작전을 위해 1996년 2월 취항한 로스앤젤레스급 최신예 공격용 핵잠수함. 선체길이 110m, 6,900톤 규모로 시속 20노트(36㎞)로 항해하며 승무원 142명(장교 16, 수병 126명)이 탑승했다. 어뢰 공격은 물론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동시에 12발까지 발사할 수 있는 등 뛰어난 공격 능력을 갖고 있다.
또 시가 9억 달러(1990년 기준)로 정보 수집과 조난 잠수함 구조 작업도 수행하며 특수 작전팀을 해안에 침투시킬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하고 있으며 승무원 100명이 90일간 보급 없이 지낼 수 있는 식량을 선적하고 있다.
그린빌은 처음 미국 버지니아주 남동부 노퍽 해군기지를 모항(母港)으로 서대서양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나 1997년 초 진주만으로 기지를 바꿨다. 그린빌이란 이름은 미국 독립전쟁의 역사가 담긴 테네시주 그린빌시에서 따온 것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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