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를 들어본 지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눈 덮인 산의 정취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하다.' 대기업 중간간부 K씨의 머리 속은 요즘 얽힌 실타래 같다. 아내와 아이들의 성화가 아니더라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그런데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시간이 없다. 토요일 저녁 늦게나 회사 일에서 해방된다.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지내야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다.
더 큰 걱정은 운전이다. 주말의 여행길은 그야말로 지옥. 여행이 아니라 고통 속으로 길을 나서는 것 같다. 구수한 여행지의 밥상 앞에서 소주 한 잔의 유혹마저 외면해야 하는 것도 괴롭다. '이제 곧 높은 산의 눈도 녹을텐데.' 아쉽지만 마음은 이미 '포기' 쪽으로 기울고 있다.
포기하지 말자. 무박 2일 여행을 떠나자. 무박 2일 여행은 최소한의 시간과 품을 들여 여행의 정취를 만끽하는 여행법. 바쁜 직장인은 물론 현지의 정보에 어두운 초보 여행객이 단골이다.
1990년대 중반 소규모 답사 단체들에 의해 등장한 무박 2일 여행은 직장의 강한 노동 강도와 심각한 교통 체증 등 한국적인 특수 상황 속에서 여행의 생활화를 이끄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들어 답사 단체가 기업화하고 각종 철도상품, 시즌상품 등이 개발되면서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무박 2일 여행은?
숙박을 하지 않고 이틀에 걸쳐 여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여행법이다.
첫 날 깊은 밤에 출발, 잠을 차에서 해결하고 이튿날 새벽부터 목적했던 여행지를 돈다. 오후 4~5시까지 즐거움을 만끽하고 여행지를 떠나 출발지에 도착하는 때는 밤 10시 내외. 22~23 시간의 여행이 가능하다.
인솔자가 여행지에 대해 해박하기 때문에 여행자 스스로 애써 정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열차 상품을 이용할 경우 교통 체증에 대한 염려가 전혀 없고, 버스 상품을 이용해도 걱정이 덜 하다. 운전기사가 구석구석의 지방도로에 훤한 베테랑인데다가 버스 전용차선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명절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 계획된 시간에 도착이 가능하다.
여행 경비도 절감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정동진 일출여행 상품의 경우 3만5,000~4만 8,000원 선. 네 가족이 떠난다면 20만 원이면 충분하다.
차비는 물론 식사, 각종 입장료, 여행자 보험까지 모두 해결된다. 승용차로 직접 여행을 할 경우, 서울서 정동진까지 왕복 기름값에 고속도로 이용료만 10만 원이 넘게 들어간다. 식사비와 각종 보조비용까지 고려하면 2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제주도, 울릉도, 백령도 등 특수한 교통 상황에 있는 여행지를 제외하고는 한반도의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자동차로 6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경북 영덕, 경남 통영, 전남 고흥 등으로 가는 상품도 많다. 연말연시에는 서쪽 해안에서 일몰을 보고 이튿날 동해에서 일출을 보는 프로그램도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높이도 제약이 없다.
심지어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꿈꾸기 어려운 백두대간 종주도 감행한다. 승우여행사의 경우 지난해 5월부터 27개월을 목표로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격주로 무박 2일 등산을 통해 백두대간을 계속 이어서 주파하는 형식이다. 지리산 청왕봉에서 출발해 현재 추풍령을 넘어가고 있다. 2002년 광복절에 강원 고성의 진부령에 도착하는데 그 때까지 남북관계가 호전돼 북한쪽 산행이 허락된다면 계속 북상할 예정이다.
■ 무박 2일 여행 히트상품
1998년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한 '98히트상품'에서 서비스 부문 본상을 받은 품목은 정동진 해돋이 열차였다. 밤차를 이용한 무박 2일 상품이다.
철도청 100년 역사의 최고 히트 상품이다. 이후 정동진 해돋이 여행은 인근의 추암, 무릉계곡, 천곡동굴 등의 관광명소와 연계된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무박 2일 여행의 왕자로 자리를 잡았다.
거제도, 해금강, 외도를 연결하는 유람선 여행이 그 뒤를 잇는다.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한려수도와 아름다운 정원으로 탈바꿈한 외도의 매력에 힘입어 요즘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버스가 출발한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준공되면 정동진에 버금가는 바다 여행지가 될 듯하다.
겨울철 최고의 상품은 태백산. 눈부신 눈꽃과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는 편한 등산로가 유혹적이다. 동해안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지리적인 입지 때문에 해돋이와 연계한 프로그램도 많이 나오고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일행에 양보' 우선 수면용 안대등 필요
'집 떠나면 고생이다.' 무박 2일 여행이라고 어려움이 없겠는가. 전문여행사인 승우여행사의 이종승(57)사장의 도움말로 무박 2일 여행을 편하고 의미있게 즐기는 법을 알아본다.
무박 2일 여행은 독특한 여행법이다. 일반적인 단체 여행과는 달리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길게는 24시간 정도를 함께 한다. 유치원생 아이부터 칠순의 어르신까지 그 구성도 다양하다.
양보하는 마음과 질서의식이 없이 자기만을 생각하면 일행 전체가 여행길이 아니라 짜증길이 되기 쉽다. 여행지에서 돌출행동을 보이거나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가장 불편한 것은 역시 잠자리이다. 버스나 기차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잠자리인데도 사람마다 불편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유난히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주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닐까.
'고통없는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약간의 고생을 각오하면 생각보다 편한 여행이 된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목에 댈 수 있는 베개나 간단한 이불, 눈가리개 등을 준비한다. 버스를 탈 경우 대부분의 짐은 그냥 버스에 두고 소지품만 갖고 행동하기 때문에 짐 때문에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예약할 때 여행사에서 일러주는 준비물을 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겨울 산행에서의 아이젠 등 중요한 것을 잊으면 다른 사람이 고생을 나눠야 한다. 가이드가 있어 대부분의 정보를 제공하겠지만 재미삼아 여행지의 지도나 코스 등을 미리 공부하는 것도 충실한 여행을 준비하는 자세이다.
여행지의 음식을 먹는 것은 그 곳을 몸 전체로 느끼는 방법. 반드시 현지의 먹거리를 경험해야 추억이 완성된다. 까다로운 사람들은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단체 식사의 경우 부실할 것이라 예상해서인데 오래 전 이야기이다. 여행사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먹거리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하더라도 처음부터 여행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메모한다. 찻길을 유심히 봐두면 한결 여유가 있을 때 부담없이 단독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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