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 롤링이 부럽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나도 부럽다"고 모든 친구들이 말했다. 이미 중년을 넘긴 여성들의 점심모임에서였다.'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인 조앤 롤링은 수줍은듯한 눈을 가진 30대 중반의 영국여성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실직 이혼 가난등을 겪으며 어린 딸과 살아가던 그는 1997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란 동화를 써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의 책들은 세계 130여개국에서 27개 언어로 번역되어 1,000만부이상 팔렸다.
신데렐라같은 그의 성공, 매일 불어나는 어마어마한 인세, 마법을 배운 해리 포터란 소년을 통해 전세계의 어린이들을 열광케하는 상상력...그 어느것 하나 부럽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날 우리가 일제히 "부럽다"고 소리쳤던 것은 "조앤 롤링이 29세의 의사와 사랑에 빠졌으며, 식당에서 즐겁게 저녁을 먹는 두 사람이 목격됐다"는 최근의 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저녁식사를 해본 것이 도대체 몇 십년전 일이냐구"라고 독신여성, 유부녀 가릴 것 없이 소리쳤다.
"나의 생에서 그런 저녁이 있기나 했나? 없었던 것 같아"라고 억울해 하는 친구도 있었다. 좀더 정리한다면 그날 우리의 부러움은 '애인이 생겼다'가 아니라 '즐거운 저녁식사'에 있었다.
즐거움, 기쁨이 너무나 부족해서 갈증이 나던 터에 조앤 롤링의 데이트를 묘사한 한 구절이 부러움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정말로 우리는 기쁨이 부족한 나날을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일이 없거나, 무슨 다른 이유들 때문에 기쁨이 부족한 걸까.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줄어들고,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일까. 그런 개인적인 이유들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있는 주변 환경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디를 돌아봐도 화가 나고, 혐오감에 빠지고, 그런 날들이 너무 오래 계속되다 보니 우리모두가 영양실조에 걸리듯 기쁨실조에 걸린 것이 아닐까.
TV와 신문은 매일매일 지겨운 뉴스들로 가득차 있다. 끝없이 일어나는 사기 폭력 불법 부정 파렴치 사건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정치 경제 사회 그 어디에도 유쾌하고 희망적인 뉴스가 없다. 특히 일년열두달 흙탕물에서 싸우는 정치판이 온 국민의 밥맛을 떨어지게 한다.
얼마 전 '지하철 민심탐방'에 나선 한나라당 이회창총재가 한달 전 같은 행사에서 만났던 여대생을 또 만나게 된 '신기한 사건'을 놓고 여야 대변인들이 한바탕 싸웠는데, 말하자면 그런 류의 사건들이 국민을 기쁨실조에 걸리게 하는 주범이다.
민주당 부대변인은 "그런 우연이 일어날 확률은 10억분의 1도 안된다. 평생귀족으로 살아온 이총재, 입만 열면 정도(正道)운운하던 이총재가 전속모델을 동원한 정치쇼"라고 공격했고,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민주당이 아무리 공작정치에 능하다 해도 이런 일까지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다니 과연 그 당이 정상적인 인간이 모여있는 집합소냐"고 받아쳤다.
유머로 풀면 좋을 일을 놓고 멱살잡이를 하는 공당의 대변인들도 기쁨실조가 너무 오래 계속되다보니 삭막하고 거칠어진 걸까.
그런 사람이 이웃에 살았다면 '천하에 상종 못 할 사람'이라고 따돌림당할게 뻔한데,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감히 유권자들앞에서 그런 '막가파'행동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그들은 무엇에 쫓기고 있는 걸까. 그들이 여론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그들만이 아니다.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이 너무나 많다.
국민은 즐거워하고 싶다. 딸아이의 우유값을 벌려고 동화를 썼다가 돈방석에 앉고 애인까지 만나 즐겁게 저녁을 함께 먹는 조앤 롤링은 못되더라도 우리 모두 가끔 기쁨을 맛보고 싶다.
우리가 기뻐했던 게 언제였나, 즐겁게 웃었던 게 언제였나, 라고 목말라 하는 국민을 한마디 유머로 풀어줄 정치인 한사람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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