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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독립운동' 선조들 존경과 예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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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독립운동' 선조들 존경과 예우를

입력
200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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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은 1919년 일본 도쿄에서 한국 유학생의 거의 전부인 600여명이 모여 조국독립의 정당성을 외친 지 82주년이 되는 날이다.당시 이 나라 최고의 지식층인 이들이 개인의 안위를 버린 채 적지인 도쿄에서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었던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일들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 전모를 요약하면, 1919년 2월8일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학우회 임원선거를 명목으로 유학생대회가 열렸다.

회장 백남규가 개회를 선언한 다음 최팔용의 사회로 대회의 명칭을 '조선독립청년단대회'로 바꾸고 역사적 독립선언식을 거행했으며 백관수가 독립선언문을, 김도연이 결의문을 낭독했다.

그후 지도부가 구속되자 일본 의회에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2월12일 100여명의 유학생들이 히비야 공원 음악당에 모였으나 일경은 회장으로 추대된 이달을 비롯, 13명을 검거하고 대회를 해산시켰다.

그런가 하면 2월23일에는 2ㆍ8독립선언서에서 천명한 민족대회를 소집하기 위한 집회와 시위를 계획했으나 변희용 등 주도자들이 구속됐다.

2ㆍ8독립선언의 주체는 그 후 다양한 위치에서 각각 다른 형태의 반일운동에 헌신하게 되고 이것이 곧 3ㆍ1운동의 발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난극복의 근세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민족의 일제침탈에 대한 독립운동은 그 훨씬 이전인 의병항쟁으로부터 비롯되어 국내뿐만 아니라 선조들이 살고 있던 어느 곳에서나 끈임 없이 이어져 왔고, 그 결과 마침내 조국은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우리민족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그토록 많은 침략을 당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고유의 민족정기를 지니고 있었고, 그 정신을 몸소 실천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는 이 분들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 시대의 주역으로 나서려면 국민 각자가 이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보답과 존경을 표시함으로써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공헌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새로운 국민 정신을 키워내야 한다.

이 정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도 나라와 겨레에 헌신 희생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이 명실상부하게 영예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이 이 분들을 진심으로 예우할 수 있는 차원 높은 보훈시책을 개발하는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우석 진주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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