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도 유행이 있다. 최근에는 강원 영월의 동강이 그랬다. 영월댐 건설에 대한 정부와 환경단체의 줄다리기 속에서 동강은 큰 바람을 탔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됐다.2001년에도 비슷한 이유로 떠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명소가 있다. 지난 달 30일 정부가 우주센터 건설부지로 발표한 외나로도(전남 고흥군 봉래면)다.
섬 살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천혜의 환경이 오염될 것이라는 우려가 혼재한다. 나랏일이면 으레 따르는 주민 보상에 대한 고민 등 해결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은 벌써 불고 있다. 발표가 있었던 바로 다음 날인 31일 아침, 봉래면사무소에는 커다란 경축 플래카드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여의도의 3.5배 정도인 작고 아름다운 섬. 본격적인 건설이 시작되기 전 올 한 해 유명 여행지가 되리라는예감이다.
외나로도는 1981년 다도해국립해상공원이 됐다. 그러나 국립공원 중 가장 한산하다.
아름다움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1995년에야 다리로 육지와 연결됐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서 무척 멀다는 것도 큰 이유이다.
덕분에 깨끗하다. 청정한 바닷물과 맑은 바람, 무공해 원시림 등 손상된 것이 거의 없다.
외나로도 여행 코스는 크게 세 가지. 길을 따라 해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육로 여행,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빙 돌아 기암절경을 감상하는 유람선 여행, 섬의 최고봉인 마치산(일명 봉래산, 해발 380㎙)을 오르는 등반 여행 등이다. 울릉도 여행법을 많이 닮았다. 부지런을 떤다면 하루에 세 가지 모두를 시도할 수 있다.
육로여행의 시발점은 내나로도와 연결된 연도교인 제2나로대교에서 시작된다. 15번 국도이다. 다리를 건너 약 1㎞를 지나면 삼거리. 왼쪽으로 들면 나로도 해수욕장이고 오른쪽으로는 나로도항이 있는 축정리와 연결된다.
나로도 해수욕장 한 쪽에는 천연기념물 제362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다. 봉긋 솟아오른 젖무덤 같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70여 종의 상록수가 뒤엉켜 자란다.
숲에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 옆으로 300 수의 아름드리 해송이 모래 해변과 함께 뻗어있다. 바닷속 경사가 완만하다. 밀물이 들었을 경우 수백㎙를 나가도 수심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익사 사고가 거의 없었다.
나로도항은 삼치 파시로 유명했던 곳. 일제시대에 이미 전기와 수돗물이 들어갈 정도로 부자 마을이었다. 한때 고흥군 세수의 3분의 1을 충당했다고 한다.
어자원이 고갈되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어선 수백 척이 들어설 수 있는 부두, 넓은 상가 등 당시의 위용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여전히 외나로도의 중심이다.
나로도항에서 약 3㎞를 더 들어가면 교동 마을. 짧은 구간이지만 아름다운 해안선을 발 아래로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점점이 떠있는 섬들과 고깃배들. 평화의 느낌이 다가온다. 교동 마을에서 15번 국도는 끝이 나고 길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예당과 하반 마을로 가는 길이고 우회전하면 염포 해수욕장에 닿는다.
10만분의 1 지도에는 하반과 염포를 잇는 섬 일주도로가 완성된 것처럼 그려진 것이 많은데 잘못된 것이다. 건설 계획은 있었지만 자연훼손을 우려해 아직 길을 내지 못했다.
하반 마을은 우주센터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는 부락. 곧 없어질 운명이다. 대항도(일명 목도)라는 작은 섬이 마을 앞에서 파도를 막아준다.
마을 앞으로 뻗은 방파제, 조그마한 해변 등이 조화를 이룬 예쁜 해안 마을이다. 일출의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해 해마다 1월 1일이면 차량이 줄을 이었다. 반대로 염포는 낙조의 명소.
고흥반도의 수많은 섬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다. 국립공원답게 야영장, 화장실, 샤워장 등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유람선은 나로도항에서 출발해 섬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다시 나로도항으로 들어온다. 두 시간이 걸리고 요금은 1만 4,000원. 현재 다도해해상관광유람선(061-833-6905) 회사가 정원 20 명, 98 명 등 두 척의 유람선을 운행하고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외나로도의 해안은 땅에서 바라본 것과 전혀 다르다. 기암 절벽의 연속이다. 불쑥 솟은 바위와 벌렁 드러누운 바위가 묘하게 어울리는 꼭두여, 진짜 짐승으로 오인할 정도로 닮은 카멜레온 바위, 먹이를 응시하는 듯한 사자 바위,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가진 깊이 70㎙의 용굴, 거대한 짐승의 콧구멍 같은 쌍굴 등 해안 절경이 계속 이어진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다.
봉래산 산행은 두 코스가 있다.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정상 정복-하산 코스와 5시간이 걸리는 정상정복-능선완주 코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만해 보이는 산이지만 섬에 들어있는 산답게 등산하는 묘미가 넘친다. 하이라이트는 8부 능선에 놓인 현백나무 군락. 어른 두 사람이 보듬어야 할 정도로 굵은 현백나무 4만여 주가 촘촘히 놓여있다.
천국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다도해의 훈풍을 한 몸으로 받는 외나로도에는 애당초 겨울이 없었는지 모른다. 발목까지 자란 보리와 마늘의 파란 이파리에서 이미 찾아온 봄을 느낀다. 봄기운이 얼얼한 외나로도는 그 따스함에 마음을 녹일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기대됩니다
"섬의 미래는 관광에 달려있어"
16년 전 고향에 돌아와 소를 키웠다. 소 값이 떨어져 망했다. 근본이 섬 사람인지라 바다에 눈을 돌렸다. 유람선 사업. 관광 미개척지에서의 유람선은 수지 맞는 장사는 아니었다. 약 15년, 숱하게 고생했지만 고집과 뚝심으로 버텼다. 기회가 오는 듯하다.
다도해해상관광유람선 고정석(48) 사장은 외나로도에서 유일하게 관광업에 종사하는 인물.
우주센터 건설지 발표가 그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인근 해역의 어자원이 한계에 달한 지금 외나로도의 미래는 관광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주민들도 그런 인식에 공감하고 있구요. 할 일이 갑자기 많아졌습니다."
두 척의 유람선을 운영하는 그는 직접 배를 모는 선장이기도 하다. 유람선 선장답게 입담이 구수하다. 외나로도의 청정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할 때에는 목청이 더욱 올라간다.
"한 번 다녀간 분들이 반드시 다시 찾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더욱 깨끗하고 편하고 친절한 곳이죠. 부족한 숙박시설 등 제반 인프라를 갖추는 게 가장 시급합니다."
그는 올해 큰 맘을 먹고 100 명 정도를 태울 수 있는 유람선 한 두 척을 더 마련할 계획이다. 왔다가 배가 없어 그냥 돌아가는 여행객이 없도록.
다도해 해상 유람선 고정석 사장
■걱정됩니다
"여길 떠나면 뭘해 묵고 사나"
"좋은 일이라면야 춤을 추겠지만 이게 어디 그럴 일인가. 속이 터질 지경이여."
우주센터의 한 가운데가 들어서는 하반마을. 52가구 110명의 주민이 몽땅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 운명이다.
하반마을 김동민(66) 이장은 그런 운명이 자신에게 닥친 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다. 우주센터 건설 후보지 중 한 곳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일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보상 기준이나 절차에 대한 고지도 전혀 없었다. 가슴이 아픈 것은 나라의 일방적인 결정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미래가 걱정이다.
"저 어른 연세가 여든 넷, 저 어른은 여든 여섯.. 내가 이 마을에서는 젊은 축이여. 평생 바다와 함께 산 사람들인데 여기를 떠나서 뭘 해 묵고 사나. 등짐을 질껴, 취로사업에 나갈껴. 공기 좋고 물 맑은 고향을 떠나면 나이 많으신 분들은 병이라고 얻을까 걱정이여."
하반마을의 역사는 400여 년. 주민들은 모두 8, 9 대째 이 곳에서 살아왔다. 정부의 발표가 난 후 주민들은 대부분 일손을 놓아 버렸다. 방파제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그물에는 아직 따내지 않은 생선이 갈매기밥이 되고 있었다.
집단 이주 하반마을 김동민 이장
권오현 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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