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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오지않는 '님' 기다려 다시 천년...'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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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오지않는 '님' 기다려 다시 천년...'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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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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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구비를 분간할 수 없다. 빗물을 피해 지붕 아래 놓인 것은 그나마 콧날이 살아있고, 볕에 내몰리면서 비바람까지 한껏 맞은 것은 그냥 둥그스름한 돌덩어리가 되어 버렸다.운주사(雲住寺ㆍ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의 돌부처들은 그렇게 표정없이 앉아 있다. 나보다 못 생긴 부처님과의 조우. 괜히 행복해진다.

원래 운주사에는 1,000 구의 석불과 1,000 기의 석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남은 것은 탑 19 기, 석불 93 구(화순군청 집계)이다.

그나마 본래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1,000 개의 돌을 깎아 세운 사람의 지극한 정성과 1,000년 세월 뽑혀지고 부서지고 깎이면서도 말이 없던 돌부처의 인내. 묵직한 무엇이 가슴 속에서 교차한다.

운주사가 세워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동국여지승람에 '석불석탑 각 일천'이라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국운이 일본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상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석공을 불렀다고 한다.

운주사는 거의 버려진 절이었다. 변변한 사하촌 하나 조성된 것이 없고, 지금도 입구에 주차장과 매점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 여행객이나 참배객을 위한 시설이 거의 없다.

그런 운주사는 1970년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등장하면서 일약 민중의 해방을 가져다 줄 미륵 성지로 떠올랐다. 그 미륵신앙의 관심은 절 오른편 산중턱에 누워있는 와불에서 비롯됐다.

키가 10㎙가 넘는 와불은 모두 2 구이다. 두 와불의 적당한 키의 조화가 부부를 연상시킨다. 운주사의 돌부처 중 표정이 가장 잘 남아있다.

근엄하면서도 자애로운 표정이다.

천불천탑이 완성되면 미륵이 지배하는 참 민중의 세상이 오고, 운주사가 있는 천불산은 새 나라의 수도가 된다고 했다.

마지막 석불이 완성되던 찰나, 일을 하기 싫은 한 동자승이 새벽닭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석공들은 아침이 온 줄 알고 마지막 석불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미륵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여전히 혼탁한 세상. 와불이 등을 털고 곧추 서는 날은 올 것인가, 결국 미륵의 세상은 올 것인가. 전설로만 내려오는 절의 내력을 떠올리며 눈 앞에 펼쳐진 기이한 풍광을 바라보는 심정은 다소 몽환적이다.

운주사의 천불천탑 중에는 보물로 지정된 것이 3개 있다.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절이지만 그 의미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올라오는 차례대로 보물 번호가 부여됐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보물은 제 796호인 구층석탑. 거대한 암반 위에 건립된 탑으로 옥개석의 흐름이 날렵하고 전체적으로 세련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운주사의 탑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보물 제797호인 석조불감(石造佛龕)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불상.

돌을 쌓아 정육면체 모양의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2구의 돌부처를 앉혔다. 돌부처는 서로 등을 대고 남과 북을 바라보고 있다.

고려 중엽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밀한 부분의 마무리가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매우 특이한 양식이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석조불감 바로 안쪽으로 놓여있는 것이 보물 제798호인 원형 다층석탑이다. 말 그대로 둥글고 넓적한 돌을 쌓아 만들었다.

시루떡을 얹어 놓은 것 같다. 친근감이 가장 많이 가는 탑이다. 현재 6층만이 존재하는데 그 위로 몇 층이나 더 있었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운주사의 탑을 제대로 보려면 공사바위에 올라야 한다. 공사바위는 대웅전 뒤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도선국사가 공사를 감독했다는 곳이다.

바위에 올라 내려다 보면 이 절이 한때 왜 운주사(運舟寺)라고 불렸는지 짐작이 간다. 타원형 절 마당은 거대한 배의 갑판이요, 우뚝 솟은 탑들은 돗대와 같다. 대웅전은 선장실이다.

바람이라도 불어 주위의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리면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미륵의 세상일까.

쌍봉사 해탈문 드니 "속세가 어드메뇨"

■ 운주사 주변 명소

운주사가 있는 화순군은 다른 전남 지역과 마찬가지로 답사여행의 보고로 불린다. 명승과 기념물,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이 중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면 병풍 같은 바위 벼랑이 아름다운 화순적벽과 독특한 양식의 절집으로 유명한 쌍봉사를 꼽을 수 있다.

이서면 창랑리의 동복호에 위치한 화순적벽은 화순군 최고의 절경. 전남 기념물 제 60호로 지정돼 있다. 단애가 물 속으로 쏟아질 듯이 앞으로 기운 채 이어져 있다.

적벽 앞에 물염정이 있어 물염적벽이라고도 한다. 조선 중종 때 이 곳에 유배됐던 선비 최산두가 소동파의 '적벽부'에서 이름을 따왔다.

1985년 동복댐의 완공으로 밑부분 25㎝ 정도가 물 속에 잠겼다. 물염정 안에는 김인후, 이 식, 권 필 등 조선의 선비들이 지은 시문이 붙어있다.

적벽이 있는 동복호는 상수원이기 때문에 물놀이나 낚시가 금지된 호수. 대신 호수 주변을 두르는 길이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쌍봉사(061-372-3765)는 통일신라 시대(839년 이전) 혜철선사가 창건하고 중국에서 유학한 철감선사가 사자산문을 연 유서 깊은 절.

대웅전, 지장전, 극락전과 요사채가 전부로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건물이 있다. 대웅전이다.

쌍봉사 대웅전의 양식은 3층 목탑 형식.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한반도에 둘뿐인 건축 양식이다. 조선시대에는 삼층전이라 불렸다.

아쉽지만 지금의 건물은 1986년에 새로 지었다. 1984년 불타 없어졌기 때문이다. 단청이 바랜 해탈문과 극락전도 옛 절의 품위를 느끼기에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절에는 국보 제 57호인 철감선사탑과 보물 170호인 탑비가 있다. 균형미는 물론 돌을 떡 주무르듯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가는 길> 광주서 나주 버스 수시운행

화순은 광주에서 가깝다. 호남고속도로 동광주나들목에서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너릿재터널을 지나면 바로 화순읍. 약 15㎞ 거리이다.

운주사 가는 길은 복잡하다. 화순읍(29번 국도)-능주사거리(우회전하면 822번 지방도)-5.6㎞ 진행 후 좌회전(817번 지방도)-도암(818번 지방도) 순으로 진행하면 입구가 나온다.

이정표가 잘 돼 있다. 화순읍에서 약 35㎞로 50분 정도 소요. 버스는 화순읍(화순교통 061-372-0428)은 물론 광주, 나주 등에서 군내 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쉴 곳> 동복호 주변 대단위 온천장

동복호 동북쪽에 화순온천이 있다. 1995년 금호화순리조트(061-370-5000) 등 대단위 온천장이 개장됐다. 리조트 인근의 서울리조텔(373-8861)도 저렴하게 숙박할 수 있다.

1박 3만 원선. 백아산자연휴양림(374-1493)이나 안양산자연휴양림(373-4199)의 산막을 빌리면 분위기 있는 밤이 보장된다.

■<먹을 것> 미꾸라지 다슬기요기 일품

강이 많은 곳이어서 옛날부터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특히 미꾸라지 요리가 유명하다.

미꾸라지와 야채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미꾸라지 숙회, 우거지와 함께 끓인 추어탕, 시각과 미각을 함께 즐기는 미꾸라지 오색쌈 등이 대표적 음식. 양지식당(061-372- 1602) 갈갱이가든(375-4208) 등이 미꾸라지의 대가로 꼽힌다.

역시 민물에서 나는 다슬기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띄운 다슬기 수제비도 명물이다. 전원식당(372- 6004)이 잘 한다.

권오현 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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