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가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서둘러 마무리한다고 해서 말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학계에서 누누이 지적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두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는데 이런 슬기도 없이 서두르니까 이러저러한 실책(失策)이 나오고 있다.최근에 보도된 대표적인 실책 사례는 산업자원부가 현대전자의 국내매각을 공개적으로 타진한 것이다. 우리나라 반도체가 차지하는 세계적인 위상을 생각할 때 현대전자를 외국기업에 팔아 넘길 수 없다.
이런 충정을 가지고 삼성전자가 인수하라, LG가 역빅딜하라고 타진하다가 기업들이 외면하자 없었던 일로 했다.
과잉설비를 조정한다는 고상한 충정으로 시작된 빅딜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을 몰각하는 해프닝이다.
더 이상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았으니 역사의 교훈을 배운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녕 그런 충정과 선의를 주체할 수 없었더라도 어디까지나 비공개로 타진했어야 했다.
뭔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 주려는 듯 산자부는 다시 7대 업종 구조조정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과잉설비로 쩔쩔매면서 자율적인 구조조정도, 연합이나 제휴도 못하고 있는 업계를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따라서 가부장적인 정부가 선의의 의도로 나서서 교통정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견 지당하기 그지없는 이런 식의 논리가 바로 빅딜의 논리이고 관치경제의 논리이다.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는 자율적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가 서둘러 업종을 정하고 일정까지 조정해 주는데 대해 재계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노조의 저항이 불보듯 뻔한데 설비의 스크랩이나 공장의 해외이전 등 골치아픈 문제들이 어떻게 일정대로 업체간에 조정될 수 있겠는가?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재계가 보기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이런 재계의 시각이 연초에 박용성 상의 회장에 의해 표출되었다. "기업에게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높이라면서 고용안정까지 맡으라는 것은 한 마리 사냥개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조정을 경영권 차원에서 보장해주면서 기업에 구조조정을 요구해야 구조조정이 제대로 된다.
이 정부 출범 때부터 학계가 지적해 온 사항을 상의 회장이 새삼 에둘러 토로하는 데서 말도 많은 구조조정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보통신부의 차세대영상이동통신(IMT_2000) 사업정책도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서두르다가 실책을 낸 사례이다.
그동안 우리가 이룬 기술력과 투자한 시설에 비추어 볼 때 정통부가 동기식에 집착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비동기식의 두 업체와 경쟁할 때 동기식 업체는 만년 3위라는 것이 시장의 전망이다. 이 전망이 틀리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입증하지 못하면서 동기식을 고집하는 것은 정통부의 헛된 집착이다.
필자는 정보통신산업에 문외한이다. 하지만 싫다는 업계에 억지로 강권하는 것은 시장논리에 반한다는 점에서 동기식 집착의 미망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주문한다.
퀄컴을 동기식에 참여토록 특사(?)를 파견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국내 관련 대기업들에게 강권하는 것은 정통부가 할 일이 아니다. IMT_2000 서비스 시기를 늦추면서 동기식과 비동기식을 아울러 나머지 한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강제가 아니라 유인이다. 일이 되도록 서두르지 말고 참을성있게 기다려야 한다. 정부부처 곳곳에서 나타나는 졸속이 정책의 신뢰성을 잃게 하고 있다. 시장경제나 민주주의가 구호로 되는 것도, 서둘러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우리 모두 서두르지 말자.
안국신ㆍ중앙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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