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전집이 책세상 출판사에서 13권으로 완간됐다.릴케는 '기도시집' '두이노의 비가' 등 시를 비롯해 현대 모더니즘 소설의 시작을 알린 것으로 평가되는 '말테의 수기' 등으로 20세기 세계 문학의 커다란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간 국내에서 그의 문학세계는 체계적 분석이 결여된 채 피상적으로 소개되거나, 일부 문인들의 시적 변용의 대상이 되는데 그쳐왔다.
김재혁(고려대) 고원(서울대) 장미영(이화여대) 교수 등 국내 젊은 독문학자들의 작업으로 완간된 릴케 전집은 이러한 부분적, 제한적 릴케의 소개에서 탈피해 그의 작품세계의 모든 것은 감상하고 비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여기서 오히려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현대화되는 도시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와 일상에서의 '불안의 냄새'를 느끼는 예민한 말테의 의식의 흐름으로 첫 장을 연다.
여기서 엿볼 수 있듯 그는 모순으로 가득 찬 불안한 현실을 살아야 하는 20세기적 인간의 문제의식을 예민하게 포착한 영혼의 작가였다.
릴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영원한 문학적 주제인 사랑과 죽음, 신의 문제를 통해 섬세한 감수성으로 내보였다.
그가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내보인 이러한 주제는 소위 몽타주 기법 등 나중에 현대 글쓰기 방식의 기원이 됐다.
자신의 평생의 연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루 살로메와의 사랑에서 탄생한 '기도시집', 조각가 로댕과의 교류에서 탄생한 '로댕론'과 그의 조각기법에서 영향받은 '사물시'로 분류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릴케는 "예술작품이 태어날 미래는 멀다"는 미래지향적인 예술관을 내보였다.
번역은 70여년 간 그의 작품을 출판해온 독일 인젤 출판사의 1987년판 '릴케 전집'을 토대로 했다.
잘 알려져 있는 그의 대표작들은 물론, 그의 초기시들과 유고시, 시작 노트, 프랑스어 시집들을 비롯해 희곡 9편과 단편소설 29편이 처음 소개됐다.
또한 그의 '예술론' 등 전집의 13권 중 10권 분량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독자들과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릴케 전집의 완역은 근래 카뮈를 비롯해 프로이트, 보르헤스, 니체 전집 등이 속속 완간된 것과 함께 우리 문학계가 서구 근대문학 도입 한 세기 이후 그를 나름대로 소화, 비평할 수 있는 성숙의 단계에 들어선 것을 반영한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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