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4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방과 후 학교에 남아서 친구들과 공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유리창을 깼다.우울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저질러진 일이니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누가 깼냐고 추궁을 하더라도 끝까지 입다물고 모르는 척할까, 아니지 순순히 자백하고 벌받는 게 나을 거야.
사뭇 갈등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 어른들한테 말해 보아야 아무 소용없을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지만, 우리 집에 머물고 있던 외당숙 아저씨가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아서 어쩔 수 없이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내일 아침에 평상시보다 30분쯤 일찍 학교에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등교한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학교가 한산할 터이니 교무실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빼지도 보태지도 말고 유리창 깬 일을 그대로 말씀드리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놀랐다. 선생님이 누가 유리창을 깼느냐고 물으면 그 때 자백하든가 심지어 입다물고 있든가 하는 두 가지 길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묻기도 전에 미리 말하라니.
아저씨는 덧붙여서, 그렇게 한 다음 그 결과는 자신이 책임질 테니 유리창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평상시처럼 내가 할 일이나 하라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30분쯤 일찍 등교하니 과연 교내가 한산했다. 교무실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자, 이렇게 일찍 왠일로 찾아왔느냐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야단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어제의 일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희색이 만면하면서 아주 다정한 말투로 알았으니 가보라고 했다. 참으로 의외였다.
그리고 조회가 끝나자 학생들에게 오늘 아침에 내가 한 일을 얘기해 주며, 모두 본받도록 하자고 했다.
유리창 깨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심지어 미국의 워싱턴 대통령이 어린 시절에 벚나무 자를 때의 일화까지 곁들였다. 나는 사실 야단맞을 짓을 했는데도 무슨 위인이나 된 듯이 칭찬을 받아 쑥스럽기까지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 피하려고 하기보다는 솔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 때의 아저씨와 담임선생님이 지금도 고맙다. 참으로 그분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황병기
국악인 이화여대 한극음악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