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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개혁 겉돈다] (1)말로만 '작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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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개혁 겉돈다] (1)말로만 '작은 정부'

입력
2001.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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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말 대전시 하위직과 기능직 118명이 같은날 옷을 벗었다. 정부가 3년째 추진한 공직 구조조정의 목표치를 맞추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들 118명은 바로 다음날 시 산하 시설관리공단 직원으로 옷만 갈아 입은채 다시 만났다. 모 국장은 관리이사라는 번듯한 명함을 받았다.199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단행된 지방정부의 인력감축은 총 4만9,506명. 수치상으로는 엄청난 공무원들이 강제로 퇴출됐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시설관리공단이나 사업소 등을 경쟁적으로 설치해 이들을 구제했다. 이 때문에 일부 자치체에선 구조조정 이후 오히려 자리가 늘어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중 행정직 공무원을 지난해 보다 6.4% 늘어난 8,340명을 신규채용할 계획이다.

공무원 인력감축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동안의 '실적'은 대부분 이 같은 숫자놀음 구조조정이었다. 4대부문 개혁을 선도한다는 정부가 개혁의 병목지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8월만해도 각 지자체에선 연말까지 모두 3,200여명이 퇴출당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직권면직자는 고작 99명. 그나마 대부분이 기능직이고 6급이하 일반직 공무원은 8명뿐이다.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 기능직 60명이 무더기로 직권면직됐지만 이들은 민간위탁으로 고용이 승계되는 데도 명예퇴직수당이 없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면직을 택한 사례다.

사정은 중앙부처도 마찬가지. 농림부는 종자관리소 직원 55명을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옮겨놓고 인력감축을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년간 중앙부처가 감축한 인력은 총 2만1,356명에 달하지만 정년이나 명예퇴직 등 자연감소가 대부분이고 나머지도 타부처나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 마련한 새 정부운영시스템도 내용을 보면 달라진 게 없다.

개방형 임용제는 이미 '내부승진용'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실적평가를 위해 도입한 목표관리제(MBO)는 연공서열의 덫에 걸려 좌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황성돈(黃聖敦ㆍ행정학)교수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로 개혁하겠다는 약속은 강한 정부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실패로 끝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현정부 출범후 1부2처 늘어나

'작은 정부'가 어느덧 큰 덩치를 키웠다.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정부조직이 세차례나 개편되면서 중앙부처는 '17부2처16청'체제에서 '18부4처16청'으로 확대됐고, 국무위원도 17명에서 19명으로 늘어났다.

29일부터 업무에 들어가는 신설 여성부와 부총리 부처로 승격되는 재정경제부 및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능을 보강할 뿐 인력확충은 전혀 없다"는 게 당초 정부의 약속이었다. 공공부문 인력감축은 지난해 말까지 목표치(13만278명)를 804명이나 초과달성했다고 홍보했다. 내막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숫자놀음 작은 정부

교육인적자원부에 신설된 인적자원정책국에는 14명이 새로 충원됐다. 이 인력은 국립대학에 파견한 공무원을 본부로 불러들여 재배치한 것이기 때문에 총정원에는 변동이 없다는 설명이다. 필요 인력을 수요에 따라 근무처만 조정했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도 5급 사무관 한자리가 없어지는 대신 1급인 국제업무정책관이 신설돼 총정원에 변동이 없다. 부총리 비서관도 4급에서 3급으로 직급만 상향조정됐다. 그러나 승진할 수 있는 높은 직급을 새로 만들어 놓고 작은 정부의 취지를 실현했다고 하는 것은 조직확대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여성부(정원 102명)만 해도 기존의 여성특별위원회의 49명과 보건복지부와 노동부에서 넘어오는 6명외에 47명을 당장 충원해야 한다.

다른 중앙부처에서도 현정부 출범후 일반행정분야에만 200여명이 늘어났다. 보건복지부에는 암센터를 관리하기 위해 지난해 암정책과가 신설됐고, 통일부에도 남북관계를 지원하는 인력이 10여명 늘어났다. 영종도 신공항 개항과 해양경찰청, 산림청 등에도 새 장비가 도입되면서 어김없이 새 인력이 따라올 전망이다.

▲무늬만 인력감축

1998년부터 지난해말까지 3년간 감축된 공무원은 총 2만1,356명. 그러나 이들이 모두 옷을 벗고 공직을 떠났다는 얘기가 아니다. 민간위탁(아웃소싱) 등으로 감축인력의 64%를 차지하고 있는 기능직들도 대부분 고용이 승계된다.

올해 감축될 4,599명도 민간위탁으로 인한 정보통신부의 우정사업분야 3,500여명과 부산항과 인천항의 항만공사화로 인한 해양수산부 502명, 민영화를 앞둔 철도청 350여명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처의 인력감축은 이미 끝난 상태다.

공기업은 이미 감축목표를 초과달성한 상황이어서 더 이상 인력감축이 없다. 중앙부처의 퇴출인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만 남겨놓아 오히려 느긋한 편이다.

그러나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지난 3년간 공공부문의 인력감축률은 18.7%으로 미국과 영국이 각각 6년과 11년에 걸쳐 15%와 22%를 감축한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황성돈(黃聖敦.행정학) 교수는 "신규수요 발생으로 새로운 조직과 인력을 충원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도 기존 부처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정원관리를 엄격히 하고 업무수행에 따른 원가개념을 도입해야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우리나라에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만병통치약 처럼 정부조직을 개편했다. 정부수립이후 지금까지 단행된 조직개편은 모두 49차례. 거의 1년에 한번꼴로 정부조직의 틀이 바뀐 셈이다.

그 결과 1948년 11부4처3위원회로 시작한 정부조직은 이제 신설된 여성부를 포함해 18부4처16청으로 늘어났다. 개편의 과정을 보면 폐지됐던 부처가 되살아나고, 격하한 부처를 재격상하는 등 제자리 걸음식 개혁과 혼선의 연속이었다.

또 정부조직 개편계획이 발표되면 입법과 구체적인 시행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입김이 가해지는가하면 부처간에 치열한 로비전이 벌어지고, 기관 내부에서도 공무원들이 밥그릇 다툼을 하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되기 일쑤였다. 어떤 경우든 지금까지의 정부조직개편이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는 없었다.

최근에도 여성부 신설이 확정되자 문화관광부가 청소년 업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타부처도 2차 정부개편때 축소 또는 폐지되었던 부서를 살리고 조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치열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병섭(金炳燮) 교수는 "정부조직의 잦은 개편은 조직의 피로도를 가중시키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부경대 윤태범(尹泰範ㆍ行政學)교수는 "외국의 경우 수십년간 지속된 정부부문 개혁으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원칙없이 그때마다 땜질식 구조개편으로 단기처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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