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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위기관리 없는 '겉만 개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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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위기관리 없는 '겉만 개미' 한국

입력
2001.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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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별나게 눈도 많이 오고 춥다. 기록에 따르면 20년만의 폭설이고 15념만의 혹한이란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만에 겪는 일이라도 그렇지, 이번에 우리 사회가 보인 총체적인 무력함에 서글픔을 금할 길 없다.남이 내 담벼락에 차를 세우면 그 땅마저도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처럼 날뛰던 사람이 쌓인 눈이 얼어붙어 이웃 사람들과 차들이 엉금엉금 기는 모습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이랴. 있지도 않은 권리를 주장하며 한껏 높였던 언성은 또 다시 "그게 어디 내 땅이지"라는 변명과 함께 수그러질 줄 모른다. 공동체의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앞이익에 공동체 의식 사라져

안전의식의 부재와 구조적인 부실은 또 어떤가. 우리집도 이번 한파에 수도가 얼어 나 역시 하루 종일 인부들과 승강이를 해야했다.

기온이 그정도로 내려가면 수돗물은 졸졸거리게 틀어놓아야 한다는 생활의 지혜가 부족했고 아파트가 싫어 일반 주택에 사는 재 잘못이 크지만, 워낙 이런 사고를 겪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야 마땅한 아파트 주민들의 까닭 모를 고생은 또 어떻게 설명하랴.

우리 사회를 혼돈의 아수라자으로 몰아넣기는 누워서 떡 먹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흔들면 그나마 어렵게 섰던 줄은 순식간에 아귀다툼으로 무너진다.

평소엔 잘 다니다가도 막힌다 싶으면 2차선 도로가 금방 대여섯 줄위 자동차들로 목이 메인다. 약간만 허술한 구석을 보이면 누군가가 어김없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우리 나라처럼 법 만들기 어려운 나라 또 있을까 싶다. 모두가 다 눈이 새빨갛게 두리번 거리며 사는 것 같다. 한치 앞의 이익만을 위해서.

그저 떨어진 일처리 바쁜 한국인

동물들 중 가장 부지런한 동물이 누구냐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미라고 답할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아니더라도 개미보다 더 바빠 보이는 동물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며 제법 장래를 설계할 시간이나 있으랴 싶다. 그저 눈앞에 떨어진 일을 해내기 바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내가 아는 외국 친구들은 종종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리켜 개미와 같다고 말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개미를 본적이 없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개미처럼 위선적인 동물도 별로 없다.

우리 눈에 띄는 땅 위의 개미들은 한결같이 성실하게 일하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저 땅 밑의 개미들은 거의 대부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놀고먹는다.

실제로 개미 군락의 노동활동을 관찰해보년 일을 하는 개미는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않는다. 누구는 죽어라 일하는데 누구는 가만히 있어 놀고먹는 개미 사회는 언뜻 보기에 불공평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개미, 노동력 60%위기 관리에

하지만 이들 놈팡이 개미들은 사실 놀고먹는 것이 아니다. 만일의 경우를 대배하는 이른바 '대기조'대원들이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소방대원들과도 같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에 대비하며 '빈둥거리고' 있는 소방대원들에게 놀고먹지 말고 나가서 일을 하라 할 것인가.

우리 사회가 기껏해야 소방대원을 비롯한 몇몇 직원들에게만 빈둥거릴 자격을 부여하는데 비해 개미 사회는 그들이 가진 잠재노동력의 무려 3분의 2를 위기관리에 투자하고 있다.

개미들이 거의 1억 년 가까이 다듬어온 생활의 지혜다. 결코 우습게 넘길 일이 아닐 듯 싶다.

아무도 우리 민족을 가리켜 게으르다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OECD국가중 가장 많은 시간을 노동에투자하는 무지스런 민족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죽도록 일하여 이젠 살만하다 싶으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실물경제의 몰락이 아니라 외환위기에 몰려 IMF에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이를 악물고 일하여 그 그늘을 벗어날 만하니 또 다른 위기가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위기는 늘 우리를 넘볼 것이고 우리의 칠전팔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반복될 것이다.

머리를 쓰며 달리면 가끔 쉬어갈 수도 있으련만. 우리가 그처럼 가슴 설레게 즐기는 섹스 역시 위기관리를 위해 진화한 적응현상이라면 믿을 것인가.

자손을 불리는 방법으로는 무성생식이 유성생식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구태여 암수를 다 만들 필요 없이 암컷만 낳으면 훨씬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구상의 많은 생물들은 다 암수가 있어 섹스를 즐기도록 진화했을까.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모두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공은 거둘지 모르지만 결국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절멸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가가 되려면 위기관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함양되어야 하고 위기 상황에도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는 사회구조를 확립해야한다.

의식구조가 정책수립 모두에 여유의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약간의 여유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때 결코 손해나는 일이 아니라느 걸 이젠 알만한 나이가 되었을 법도 한데.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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