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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回節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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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回節江

입력
2001.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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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신문에 실린 외신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수만 명의 힌두교도들이 인도 북부 알라하바드 시 갠지즈 강에 마련된 부교를 건너는 장면이다. 과거의 죄를 강물에 씻기 위한 행렬이라는 사진설명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다리 위를 가득 메운 그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렇게 강가를 찾아가는가. 그것이 힌두교 축제 의식의 하나임을 모르지 않지만, 죄를 씻으러 떼 지어 몰려가는 모습이 충격으로 와 닿는다.

■우리나라에도 죄를 씻기 위해 강물에 목욕하는 행렬이 있었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잡혀갔다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을 오랑캐에 더럽혀진 몸이라고 배척하는 집안이 늘어나자, 목을 매는 여자들 시신이 길가에 늘비하였다.

환향녀가 '화냥년'으로 음전되어 멸시와 천대의 대명사가 되자 인조 임금은 전국에 회절강(回節江)을 지정하고, 그 곳에서 몸과 마음을 씻은 환향녀는 과거를 묻지 말고 모두 받아들여 주라는 교지를 내린다.

■서울과 경기도 일원은 한강, 강원도는 소양강, 충청도는 금강, 황해도는 예성강, 평안도는 대동강이 회절강으로 고시되었다.

강물에 몸을 씻는다고 더럽혀진 몸이 깨끗해진다고 믿을 사람이 있으랴만, 만일 회절강에 목욕재계한 환향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임금의 강한 경고때문에 사대부 집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청나라에 잡혀갔던 사람이 60만명이 넘었으니 환향녀 소동이 어떠했을까.

■인도에서는 연중행사인 갠지즈강 목욕행렬 사진을 보고 우리 역사의 회절강까지 떠올린 것은 잘못을 뉘우치는 데 인색한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워서다.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자신이 속한 일터와 출신지의 이익을 지키기에 온갖 어거지를 쓰면서도, 상대편이 나빠서 나라가 이 꼴이라는 저 어지러운 '네탓 축제'를 보라.

특히 설날 민심을 전하는 정치인들의 말에는 내 잘못은 없고 온통 상대 탓이다. 내 죄를 씻어내는 현대의 회절강을 정해 우리 모두 한번씩 풍덩..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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