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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의 작품세계 / 구·추상과 동·서양화 넘나들며 변화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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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의 작품세계 / 구·추상과 동·서양화 넘나들며 변화무쌍

입력
2001.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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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의 작품세계는 격정의 20세기를 대표했던 화가답게 변화무쌍했다. 구상과 추상,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들면서 변신을 거듭해온 작가는 인물, 꽃과 새에서 청록산수, 바보산수, 현대적 풍속도, 추상적 이미지 작업까지 소재도 다양했고 작업량도 방대했다.어느 서양화가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소묘로 빠르고 힘이 넘치는 필력을 과시했다.

7살 때 청각을 잃었던 운보가 장애를 딛고 먹과 대화하기 시작한 것은 16살 때. 진명여고를 나온 교사 출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당대 최고화가 이당 김은호를 만나게 된 것이다.

1931년 17세 때 '널뛰기'로 선전에 입선한 운보는 이후 총독상과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고 서른에 추천작가가 됐다.

1930년대 현실에 바탕을 둔 섬세한 묘법과 뛰어난 구성은 해방을 맞이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제시기의 화풍을 청산하고 자신만의 화풍을 꽃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동양화 고유의 필선과 수묵의 정서에 바탕을 둔 그의 필법은 50년대 힘으로 대표되는 운보 예술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속도감과 에너지가 넘치는 '군마도'와 '탈춤'시리즈를 탄생시켰고 이후 그의 뜨거운 피는 '투우' '싸움' '군작' 등으로 옮겨졌다.

싸우는 소, 1,000마리의 참새 떼, 격렬하게 달리는 군마는 후천적으로 청각장애자가 된 비극적 운명의 한 예술가가 들끓는 힘으로 토로한 운명의 그림이었다. 붉은 색과 노란 색이 타는 듯 묘사된 '태양을 먹은 새'도 이 시기에 완성됐다.

아내 우향과의 사별은 운보의 예술세계를 한단계 승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청록산수와 바보산수의 시대를 연 것이다.

기관차처럼 달려온 자신의 삶을 중단하고, 우리 산하가 지닌 청명함과 넉넉함을 보듬어 안고 되돌아볼 줄 아는 작가가 된 것이다.

미추를 초월한 상태에서 표현되는 바보 산수엔 운보 특유의 유머와 능청스러움이 뒤엉켜 있다.

운보는 "바보란 덜 된 것이며, 예술은 끝이 없으니 완성한 예술은 없다. 그래서 바보산수를 그린다"고 밝힌바 있다.

폭포수처럼 새로운 작품을 열정적으로 내놓던 그는 89년 또 한차례 변신을 시도했다. 대걸레를 사용한 문자추상 '심상도'시리즈는 스스로 "60년 화도(畵道)의 결산"이라고 할 만큼 대담하고 강렬했다.

심경자 세종대 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화가였다. 사실적이고 강렬한 색채로 화폭을 장악했다. 진정한 예술가로서 혼을 듬뿍 담아내셨다"고 말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운보는 남성으로서, 예술가로서 매력적인 분이었다. 삶을 압도하는 기가 있었고 따스한 정감까지 갖추고 있어 대가로서의 자질은 다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다양한 예술세계를 가진 '움직이는 인간 박물관'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그의 너털웃음을 이제 볼 수 없지만, 새가 지저귀고 시냇물이 흐르는 그의 바보산수의 화폭에서는 여전히 힘찬 생명의 소리가 넘쳐 흐르고 있다.

▦1913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 출생

▦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화백 문하 입문

▦1931년 조선예술전람회서 '판상도무(板上跳舞)' 입선해 데뷔

▦1946년 동료화가 우향 박래현과 결혼

▦1952년 예수 일대기 다룬 작품 30점 제작

▦1955년 대작 '군마도' 와 '탈춤' 시리즈 제작, 홍익대 강사

▦1962년 수도여자사범대학 회화과 학과장

▦1976년 우향 타계. 바보산수 제작

▦1977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 초대회장

▦1984년 충북 청원군에 '운보의 집' 완공

▦1985년 가톨릭으로 개종.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영세 받음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서 '운보전'.

▦1993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서 필순기념 대회고전

▦1994년 운보 전작도록(전5권) 발간

▦2000년 갤러리 현대 등에서 미수 기념특별전. 북한의 동생 기만씨와 상봉

▦2001년 타계

송영주

yjsong@hk.co.kr

■故 운보 김기창 선생님 靈前에

"자유로운 모색과 실험 새 章을 열었습니다"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선생이 타계하셨다. 운보 만큼 한국화를 온몸으로 대변해 온 미술가도 드물다.

그의 모색과 실험은 한국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그러한 모색과 실험이 없었다면 한국화의 오늘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만큼, 운보의 예술은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화 전체의 역사에 관계된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운보의 예술은 이제금 다시 평가되어야한다.

운보 선생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문하에서 수업을 했으며, 30년대 초반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등단하셨다. 20대에 조선미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가장 기대되는 예술가로서 각광을 한 몸에 받았다.

정작, 운보 예술의 개화는 해방이후에 와서야 이루어지게된다. 운포(雲圃)란 호의 포자에서 굴레(口)를 벗어버린 운보란 호를 사용함으로써 그의 예술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폭발적인 질주를 거듭하게 된다.

그의 모색과 실험은 고루한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한국화를 새로운 궤도에 올려 놓은 것이 되었다. 한국화의 현대화의 모습은 50년대 초반, '구멍가게' '타작 마당' '복덕방' 으로 이어지는, 해체와 재구성의 작업에서 하나의 성과를 획득하였다.

흔히 입체적 구성주의 작품으로 명명되는 이 계열의 작품은 힘찬 운필과 압축된 구성으로 밀도 높은 조형성에 도달된 것이었다.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해체와 종합을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운보 선생 만큼 자기 혁신과 자기 완성을 거듭해보인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때로는 의욕과잉으로 비추었고 도착적 의식으로도 의구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왕성한 변혁의 추진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한국화가 가능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50년대 후반의 '군마' 와 '투우' 시리즈는 가장 운보다운 작품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폭발하는 내면의 에너지가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로 응결된 것이 이들 작품들이라고 보고 있다. 그의 외모가 풍기는 육중한 무게와 청각장애인으로서의 내면적 울분이 격정적인 소재를 통해 표상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단면에 지나 지 않는다. 세필과 진채의 기교적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대상을 지워버린 소박한 채색의 추상작품도 있다. 섬세한 일면이 있는가 하면 표현적이기도 하다. 사실적인가하면 추상적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의식의 분출이야말로 운보 예술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서도 운보 선생은 언제나 민중의 삶 속에서 자신의 깨어있는 의식을 찾으려고 하였다. 일생을 통해 가장 많이 다룬 소재는 단연 풍속도였다.

풍속은 오늘의 현실의 삶뿐만 아니라 과거의 삶으로 이어지는 전통에의 회귀야말로 그의 풍속도의 참다운 내면이었다.

70년대 초에 나타난 '바보산수' '바보 화조' 는 조선 시대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놓은 전통계승에의 가장 큰 성과였다. 전통 계승의 뛰어난 하나의 방법론이었다.

해학이 넘치는 내용과 치기만만한 건강한 미의식은 우리 고유의 소박한 미의 전형에 다름 아니다. 그는 일생을 통해 부단히 우리 고유한 미의 전형을 탐색하고 그것에 새로운 옷을 입혔다.

이미 많은 동료들이 붓을 놓거나 자기 세계 속에 안주하고 있을 때 그는 쉼 없이 또 다른 모색의 장을 펼쳐보였다. 시간이 모자라는 듯이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한 사람이 이룩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들을 해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부릅뜬 의식과 거침없는 방법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미술사의 기록으로서만 남게 되었다. 삼가 명복을 빈다. 영면하소서!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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