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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 화백 타계 / 청각장애 이긴 '불꽃 예술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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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 화백 타계 / 청각장애 이긴 '불꽃 예술魂'

입력
2001.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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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은 화가이기 이전에 위대한 인간 승리자였다. 청각장애를 딛고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뜨거운 예술혼을 불태웠으며, 온몸을 던져 같은 처지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봉사했다."나는 귀가 안 들리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듣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를 까마득히 잊을 정도로 담담하게 살아왔습니다.

요즘처럼 소음공해가 심한 환경에서 시끄러운 세상소리 듣지 않고 예술에 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친.아내 두여성에 영향받아

아내사별후 농아복지 더 열심

다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신부님의 강론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 한(恨)이라면 한이지요."

80㎏가 넘는 거구의 운보가 용기를 잃지 않고 예술에 몰입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와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을 이끌고 김은호 화백을 찾아갔던 어머니 한윤명 여사와, 30년을 동고동락했던 예술적 동지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던 우향 박래현씨다.

우향은 76년 57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운보에게 구화법을 가르치는 등 생애와 예술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9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운보는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다"며 "너무 오래 살지 말고 빨리 당신 곁으로 와 편하게 지내라고 하신다"고 기력이 쇠해 가는 가운데 어머니와 우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이 토로한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삶에서 우향과의 사별은 청각장애 못지 않은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운보는 슬픔 속에서도 밤마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려 '바보산수'라는 걸작을 만들어냈고, 슬픔 속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79년 한국농아복지회 초대회장에 취임하고, 86년에는 사회복지법인 한국청각장애자복지회를 창설했으며 청음회관을 건립했다.

84년부터는 충북 청원군 운보의 집에 기거하면서 농아들에게 도자기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훈련원인 운보공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85년 농아스포츠대회 때는 한국선수단의 출전비를 전담하기도 했다. 운보는 " 농아복지사업은 하늘이 내리신 명령"이라며 자신의 모든 재산과 시간을 쏟았다.

또 한명 그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여성은 막내 딸 영(金 瑛ㆍ45ㆍ사랑의 선교수녀회 회장)씨다.

딸이 수녀가 되자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운보는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나의 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마음의 귀는 크게 열어 잘 들리지." 역경을 이겨낸 운보의 선량한 삶, 불굴의 의지는 모두의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 것이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운보빈소표정… 각계인사 조문 줄이어

삼성서울병원 영안실과 충북 청원군 내수읍 '운보의 집' 등 두 곳에 마련된 운보의 빈소에는 설 연휴 내내 각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아들 완(52)씨는 "오랜 병마로 고통받으셨지만, 가실 때는 편안하게 가신 것 같아 그나마 마음이 좀 낫다"며 "북의 작은아버님을 만날 때까지 갈길을 미루셨던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큰딸 현(53)씨와 막내딸 아나윔(속명 영) 수녀는 "아버님의 예술혼이 화단과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미술계 인사들은 '한국 화단의 큰 별이 졌다"고 안타까워하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3일째 삼성서울병원 빈소를 찾은 제자 심경자(여ㆍ57ㆍ세종대 교수)씨는 "선생님의 작품은 삶을 그대로 닮았다"며 "그림에 힘이 넘치는 진정한 예술가셨다"고 말했다. 이기왕(64ㆍ서양화가)씨는 "엄하면서도 다정한 선배였다"고, 이억영(79ㆍ화가)씨는 "한때 반짝하는 화가가 되지 말라고 늘 충고하신 스승"이라고 운보를 회고했다.

○.빈소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체육인 손기정옹 등 각계 인사가 보낸 화환이 늘어섰다. 김수환 추기경은 23일 오후 직접 빈소를 찾은 데 이어 27일 오전 9시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영결미사를 직접 집전한다.

Ο.'운보의 집' 에서 6년여 동안 운보를 돌보며 임종을 지킨 박태근(50ㆍ여)씨는 "정자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시던 모습이 쉬 잊혀질 것 같지 않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한편 유족은 '운보의 집' 내 운향미술관을 운보미술관으로 개칭, 대표작들을 모아 5월께 재개관할 계획이다. 또 도예전시관, 운보공방, 연못과 정원 등 '운보의 집' 시설을 앞으로도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무료 개방키로 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박선영기자

philo9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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