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 1월26일 아서 필립이 이끄는 11척의 영국 선단(船團)이 오스트레일리아의 보터니만에 도착했다.이들 최초의 식민자들 1,030명 가운데 726명은 유형수였다. 이들은 이곳에 첫 백인 식민지인 시드니코브, 지금의 시드니를 건설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그 뒤 이날을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해오고 있다. 물론 그 땅의 토착민들은 이 날을 기념하지 않는다.
뒷날 오스트레일리아('남쪽의 땅'이라는 뜻)라고 불리게 될 새 대륙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은 17세기 초의 네덜란드인들이다. 그러나 식민화에는 영국인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이 대륙의 일부를 처음으로 영국 영토로 선언한 사람은 제임스 쿡이다. 그는 1770년 대륙 동해안을 탐험한 뒤 요크곶 부근의 한 섬에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대륙 동부의 영국 영유를 선언했다.
최초의 식민자들 가운데 다수가 유형수였던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오스트레일리아는 당초 유형 식민지였다. 영국은 1776년 미국 독립전쟁이 터진 뒤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던 죄수들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자 오스트레일리아를 새 유형 식민지로 택했다.
19세기에는 대륙 전체로 식민이 확산됐다. 넓고 기름진 들판이 발견되고, 양모의 생산을 중심으로 목축업이 발달하고, 금광이 발견되고, 이민과 자연증가로 인구도 늘어났다.
자유이민이 늘어남에 따라 유형을 중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져, 1840년에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를 빼고는 유형이 중지됐다. 금광의 잇따른 발견은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의 이민을 촉발시켰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1880년대부터 백호주의가 제창됐다.
88년에 중국인 이민이 제한된 데 이어, 96년에는 모든 유색인종의 배척이 결정됐다. 백호주의가 폐지된 것은 1973년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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