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전을 열면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상처 난 나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욕망에서다. 암흑 속에서의 고독과 오한을 느끼며 아픔에 신음하는 내면의 언어를 추려내어 가혹하고 엄격한 훈련으로 그림을 그린다.'화가 손상기(1949~1988)는 1981년 서울 동덕미술관 첫 개인전 때의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나이 40을 넘지 못하고 요절한, 자신을 '돌출된 가슴 뼈, 외봉 낙타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 미치는 키'로 표현했던 천재화가의 가슴 아픈 창작의 변이다.
'화가 손상기 평전'(중앙M&B 발행)은 평생을 척추장애로 살아야 했던 한 위대한 화가에 바치는 헌사이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신체장애자로서 겪은 고난과, 예술가로서 품은 포부, 두 여인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과 질투를 고스란히 담았다.
그 고난은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에게 던지기 위해 감춰뒀던 돌멩이 크기와 비례했고, 그 포부는 좁은 서울 아현동 화실의 냉랭한 한기와 반비례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무엇보다 기쁘게, 그리고 힘들게 했던 것은 한 여성에 대한 사랑이었다. "내 마음 속엔 예쁜 아이가 한 사람 있다.
수소폭탄 속에서도 살아날 그 마음, 그 아이. 누가 어떤 문초를 해도 난 그 아이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나의 두 눈에 흙이 들어갈지라도.."
8세 연하의 여성 준의 만남과 2년 9개월 동안의 동거, 딸 아이 세린의 출생, 두번째 여인 연우와의 만남과 결혼 등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10여 년을 일간지 미술담당 기자로 활동한 저자(한국일보 문화부장)는 구상전 공모전 5회, 한국창작미술협회 공모전 2회 입상이라는 화려한 예술가의 행적과, '그날의 나는''자라지 않는 나무''공작도시'등 대표작에 대한 꼼꼼한 분석도 빼놓지 않았다.
화가는 1988년 2월 11일 폐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관명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