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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서로를 받아들이자

입력
2001.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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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 한강변에 우뚝 솟아있는 39층 테크노마트 건물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서로를 받아들이자.' 새삼 이 구호가 눈길을 끈다.답답한 정국 해결의 방법을 집약한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야 간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너무 오래 계속되고 있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그 말 그대로 들리지 않는다. 다만 싸우는 모습만 부각되어 국민은 지친 상태이다. 그래서 지극히 간단한 이 구호가 호소력을 갖는다.

지난 일요일 오전 2시(한국시간), 미국에선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취임식 광경을 TV로 지켜보면서 부러운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대선 과정에 복잡한 문제가 많았다. 국론 분열이 심각해서 나라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아냥댔다.

그러나 미국엔 민주주의의 전통이 살아있었고, 취임식장에서 부시와 고어는 굳은 악수로 서로를 받아들였다. 세계 최대의 권력을 놓고 벌인 선거 결과와 함께 서로를 만인 앞에 인정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긍정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국민의 힘 때문이었다. 합리적인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을 경우 여론은 엄격하게 판단해서 대가를 치르게 한다. 미국 언론의 논조가 그러했다.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큰 사건이 벌어져도 지나가면 그뿐이다.

정치 경제 사회의 어느 분야에도 과거의 교훈이 도움되는 것 같지 않다. 엄청난 파문이 있더라도 그때만 넘기면 그뿐인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도 책임이 있고, 정치지도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금 사회갈등은 저 깊은 속 안에서 곪고 있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보수성향과 진보성향, 명문학력과 비명문학력의 구도 위에 지역감정이 겹쳐져서 이해집단 간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김대중대통령이 하는 일은 외교나 남북문제나 무조건 싫어하고, 반면에 무슨 결정을 해도 절대 지지하는 세력이 그렇게 많이 존재하는지 신기하다. 또 야당과 관련된 일은 무조건 꼴보기 싫어하고, 또 대안이 되든 안되든 일방적으로 편드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이상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서로를 증오하는 감정을, 조계종 홈페이지의 게시판처럼, 마구 솟구쳐내는지 그것도 의아하다.

전에는 보수층이 흐름을 주도하고, 진보 색채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해가 걸린 집단 간의 갈등이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지역감정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어떤 선거와 여론조사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정치에는 사회갈등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시대사명을 절감하는 지도자들이 정치를 맡을 때 그러하다. 반대로 지금처럼 대립이 극한에 이르면 상처만 키운다. 이해집단 모두가 제각기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은 결과적으로 정치가 가져다 준 후유증이다.

체념하고 포기하기엔 지금은 정치지도자들의 올바른 판단이 너무 중요한 시점이다. 온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미래를 향해 나가고 있다. 미국에선 부시정권의 새로운 세계정책이 시작되고, 필리핀에선 국민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중국의 변화를 확인한 북한의 김정일위원장은 커다란 변혁을 모색할 것이다.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무역에도 이상기후가 감지되고 자원을 둘러싼 동향도 심상치 않다. 세계정세와 민족문제 그리고 경제를 위해선 안정된 내치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이제 서로를 받아들이자. 김대통령과 이회창총재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여당과 야당이 난국타개의 쌍두마차로 나서자. 이해집단들도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자.

자기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살펴보자. 자신만 알고 자기 이해만 앞세우는 생각을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지도자가 서로를 받아들이면 국민들도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사회기풍이 조성되지 않겠는가.

최성자 논설위원

sj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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