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을 맞는 이산가족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북쪽의 자식을 만난 부모들은 자식들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고, 형제를 만난 가족들은 북의 자식 때문에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숨진 부모들의 차례를 준비하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상봉 순서를 기다리는 가족들이나 이미 상봉 가족들 모두 '빨리, 또 한번'만남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나았을까! 명절이 돌아오니 더욱 힘들어.."
암 투병 와중에 북녘의 맏아들 안순환(安舜煥ㆍ65)씨와 상봉, 진한 감동을 안겼던 이덕만(李德萬ㆍ88) 할머니의 경기 하남시 집에서는 올해도 '맏제주'없는 차례를 준비하고 있다.
둘째아들 민환(59)씨는 "최근 들어 어머님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 거동은 물론 말조차 꺼내기 힘든 상태"라며 "설에 차례나 제대로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이씨의 딸 순옥(63)씨는 "어머니가 오빠를 만난 뒤 '꿈결 같다'는 말을 자주해 최근 금강산 관광 때 오빠집으로 실제 통화를 시도했다 제지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가족들은 "전화통화만이라도 이뤄진다면 어머니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8월 1차 상봉 때 극적으로 '병원 상봉'을 했던 북한의 량한상(梁漢相ㆍ70)씨 어머니 김애란(金愛蘭ㆍ88ㆍ서울 마포구 서교동)씨 가족도 이번 설이 쓸쓸하기는 마찬가지. 아들을 만나면서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 듯했던 김 할머니는 최근 다시 말수를 줄인 채 누워 지내고 있다.
김씨의 아들 한종(漢宗ㆍ65)씨는 "지난 신정 때 모였던 가족들도 일부러 형님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며 "지금으로선 어머님이 돌아가시더라도 소식조차 알릴 수 없지만 빨리 서신왕래라도 이뤄지기를 학수고대한다"고 말했다.
2차 상봉 당시 동생 기만(基滿ㆍ72ㆍ평양미술대 교수)씨와 병실 상봉한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ㆍ89) 화백은 최근 퇴원해 청주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으나 역시 병세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완(完ㆍ52)씨는 "기억이 흐려져 만남 자체도 희미하지만 설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수심이 깊어지신다"며 "남북협상이 잘 이루어져 올해는 작은 아버님의 서울 전시회가 꼭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생사도 모르고 지내다 뜻밖의 만남으로 새로운 의미의 명절을 맞는 이산가족들도 있다.
2차 상봉때 평양을 다녀온 우원형(禹元亨ㆍ66ㆍ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이번 설에는 부모님 영정을 모시고 차례를 지낼 수 있게 됐다"며 북의 가족에게서 받아온 아버지 영정을 연신 쓰다듬었다.
2차 상봉에서 50년간 죽은 줄로 알았던 형님을 만난 홍성표(洪成杓ㆍ65ㆍ서울 성북구 길음동)씨는 그동안 형님의 제사상을 함께 차려오던 설 차례상에 올해는 처음으로 생일상을 올릴 예정이다. 홍씨는 "비록 만나지 못하는 가슴은 서글프지만 맏형이 다시 살아나 맞는 첫 설"이라며 "차례상을 받는 조상님들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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