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시민이 홧김에 차를 몰고 돌진하는 바람에 파출소가 불탄 사건은 공권력을 얕보는 그릇된 풍조의 결정판인 듯 비친다. 그러나 잇단 공권력 도전 사례들과 나란히 놓고 보면, 공권력 집행이 합목적성과 형평성을 결여한 것이 스스로 권위를 허무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 또한 두드러진다.단호한 대처만을 외칠게 아니라, 심각한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이 시민의 행위는 아무리 만취 상태였다지만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면허취소와 벌금형이 따르는 음주단속을 받은 경위다. 이 사람은 술을 함께 마시고 헤어진 친구들이 싸움 끝에 연행됐다는 말을 듣고 차를 몰고 스스로 파출소를 찾았다. 파출소에서 어떤 문의와 응대가 있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술 취한 사실을 안 경찰관이 음주 측정한 결과, 면허취소에 해당돼 그에 따라 처리했다고 한다. 일단 귀가했던 그는 다시 파출소로 가서 '억울하다'고 항의하다가 끝내 일을 저질렀다.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파출소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을 그를 음주 단속한 것이 적절한지 여부다. 음주운전의 범죄성과 단속의 중요성은 논란할 게 없지만, 당장 운전대를 잡고 주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단속한 것은 법률적으로도 시비할 여지가 있다. 혹시 경찰관들이 만취해 귀찮게 하는 그를 혼내주고, 실적도 올릴 겸해서 무리한 단속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것이다.
단속과 처벌보다 예방과 선도가 중요하다면, 이 경우에도 만취한 시민이 운전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음주단속 목적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단속만 하고서 그냥 차를 몰도록 방치한 것은 음주운전자 처리절차를 어긴 것이다. 결국 파출소 돌진 사건을 초래한 책임이 경찰에도 크다는 얘기다.
이 사건에서 엿보이는 경찰의 잘못은 공권력의 형평성 논란과도 관련 있다. 올 초 술 취한 국회의원 운전기사 들이 파출소에서 행패부린 사건을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며 개탄한 이들이 많았다. 조직 폭력배들의 난동 사건 때도 비슷했다.
그러나 이들 사건의 본질은 공권력을 엄정하고 형평성 있게 행사하지 못하는 경찰의 그릇된 관행이다. 파출소 돌진 사건을 일으킨 시민이 목수 일 하는 서민이란 사실과 비교하면, 평소 엄정한 법 집행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 공권력 도전 사례를 거듭 낳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권위를 지키려면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공정성을 보여야 한다. '엄중 대처'만을 외치는 것은 결코 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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