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직업을 잃거나 비정규직이 되고 나면 '저층(低層)근로자' 지위에서 탈출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비정규직의 3분의2는 5년 후에도 비정규직이고, 실업자의 3분의1은 취업해도 다시 실업자가 된다.'
IMF 관리체제 진입 이후 정규직이 대대적으로 비정규직과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이처럼 저층으로부터의 탈출이 어렵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琴在昊) 연구위원이 19일 한국노동경제학회 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 '비정규직 함정은 존재하는가'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 5,000명의 직장이동을 추적한 결과 5년 후에도 그대로 비정규직인 비율이 68%로 집계됐다.
미국의 경우 비정규직 가운데 우수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관례여서 비정규직이 정규직 진출의 가교역할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라는 것이다.
비정규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중ㆍ장년 저학력자가 대부분이어서 현재의 지위에서 더 높은 계층으로 상승하기 위한 능력과 자원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5년간 비정규직 유지율이 높은 계층은 연령별로는 40대(81.9%)와 50대(78.1%)가 가장 많고 학력으로는 중졸(76%)과 초등 이하(80.7%)가 대부분이었다.
비정규직이 고착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업도 반복되고 장기화한다. 노동연구원 이병희 부연구위원의 최근 논문 '반복실업과 실업의 장기화'에 따르면 98년1월~99년6월 실업자 4,9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복적으로 실업을 경험한 경우는 31.6%인 1,564명에 달했다. 2차례 경험자는 23.4%, 3차례는 6.3%였으며 4회 이상 실업한 사람도 1.9%가 있었다.
이 기간의 반복실업자 비율 31.6%는 96년1월~97년6월에 조사한 반복실업자 비율 16.6%보다 배나 높다. 이는 경제난으로 인한 실업 피해가 기존 실업 경험자들에게 집중됐음을 말해준다. 또 1년 이상 장기실업자도 96년 전체 실업자의 3.9%이던 것이 99년 4.7%로 높아졌다.
또 노동연구원 방하남 연구조정실장은 논문을 통해 "비정규직으로 있거나 직업을 잃은 '저층(低層)근로자'라는 지위는 본인에게 고착화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까지 대물림된다"며 "아버지의 직업적 지위와 학력이 자녀에게 40~60%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계층연구소 정진욱(鄭珍旭) 소장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한다면서 근로자 내부의 상ㆍ하 이동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저층근로자에 대한 직업훈련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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