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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평화선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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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평화선 선포

입력
2001.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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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월18일 대통령 이승만은 한국의 연안 수역 보호를 위해서 평화선이라는 이름의 해양주권선(海洋主權線)을 선언했다. 한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평화 유지에 그 목적이 있다"고 명분을 밝혀 평화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 해양주권선은 이승만의 주장으로 선포했다고 해서 이승만 라인이라고도 부른다.평화선은 해안에서부터 평균 60마일에 이르렀는데, 정부는 이미 발견된 것이든 앞으로 발견될 것이든 또 그 심도(深度)를 불문하고 이 선 안쪽 수역에 포함된 모든 자원은 대한민국에 그 배타적 지배권이 있다고 선언했다.

평화선 선포의 배경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어업 격차와 대륙붕 자원의 보호 필요성에 대한 인식 외에도, 세계 각국의 영해 확장 및 전관수역(專管水域) 선언 추세가 있었고, 또 맥아더 라인의 철폐라는 사건이 있었다.

맥아더 라인은 1945년 9월 미국 극동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일본 주변에 선포한 해역선(海域線)으로 이 선 바깥에서 일본의 근해 어업이 일체 금지되었는데, 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발효와 더불어 소멸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임박한 맥아더 라인 철폐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평화선 선포에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은 당연히 일본이었고, 미국과 대만을 비롯한 우방국들도 부당한 조처라고 비판했다.

평화선이 선포된 지 8개월 뒤인 52년 9월, 당시 국제연합군 사령관 마크 웨인 클라크는 북한군의 잠입을 막고 전시(戰時) 밀수출입을 봉쇄하기 위해 한반도 주변에 해상방위선을 설정했는데, 클라크 라인으로 불린 이 선(線)의 안쪽 수역이 평화선의 안쪽 수역과 거의 겹쳐서 평화선 선포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셈이 됐다. 평화선은 65년 6월 한일조약 체결 이후 사실상 소멸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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